아이가 갑자기 말 더듬을 때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언어 발달 과정의 다양한 원인에 의해서도 말을 더듬을 수 있다. 첫째, 말하는 속도가 너무 빠르거나 말을 너무 급하게 하는 경우다. 둘째, 아직 충분하게 언어 발달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이 급해지거나 흥분했을 때 말을 하게 되는 경우다. 셋째, 머릿속에 생각은 많은데 이 생각이 말로 표현될 만큼 아직 언어가 발달되지 않았을 경우다. 이외에도 주의 집중을 잘 못하는 아이, 즉 산만한 아이들도 말을 종종 더듬곤 한다. 생각이 굉장히 빠르고 순차적으로 차근차근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치원에서 점심시간에 무엇을 먹었는지 엄마와 이야기하면서 머리는 벌써 그 다음에 친구와 놀았던 것을 생각하느라 말을 더듬을 수 있다. 결국 인지적 충동성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6세 이전에 나타나는 말 더듬는 현상은 대부분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6세 이후부터 취학 후까지 지속되면 자세한 평가와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아이가 말을 더듬을 때 부모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무엇보다 아이가 말을 더듬더라도 중간에 개입해서 아이의 말을 끊지 말고 끝까지 들어 주어야 한다. 부모들 중에는 아이가 말 더듬는 것이 답답해서 중간중간에 끼어드는 경우가 많다. “천천히 다시 말해” “발음을 정확하게 해야지” “숨 좀 쉬면서 말 해” “못 알아듣겠잖아” 하면서 자꾸 아이의 말을 끊는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기표현을 하기가 어렵다. 중간에 중지시켰다가 다시 말하게 하면 아이의 긴장감과 불안감이 더 높아져서 이 때문에 말을 더듬는 것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아이들끼리 서로 말하는 경쟁을 하는 상황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부모가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이 서로 먼저 부모에게 자기 일을 말하려고 할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한 아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아이가 바로 그 말을 채 가서 자기 말을 하게 되고, 또 그 말을 함과 동시에 다른 아이가 끼어들어 말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말을 하는 것을 경쟁하는 분위기가 되면 급한 마음에 아이가 말을 더듬을 수 있고 더듬는 것이 심해질 수도 있다.
아이가 말을 하는 상황에서 무언의 압박을 주지도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외출했다가 돌아온 엄마가 “할머니께서 오늘 네가 어떻게 지냈는지 엄마한테 다 이야기해 주셨는데…”라며 다 알고 있다는 식의 말을 하면, 아이는 말을 하기 전부터 압박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말을 더 더듬을 수 있다.
요즘처럼 바쁜 사회에서는 부모와 아이가 편안한 마음으로 수다를 떨 시간이 별로 없다. 말을 더듬는 아이일수록 긴장을 이완시킬 수 있는 상태에서 부모와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기회를 많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말하는 것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부모는 아이가 말을 더듬는 것에 중점을 두지 말고, 말하는 내용이나 말하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격려와 칭찬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