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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부모마음 아이마음]〈77〉말하려 노력하는 아이에게 칭찬과 격려를

입력 | 2019-05-21 03:00:00

아이가 갑자기 말 더듬을 때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육아를 하다 보면 아이가 일정 기간 갑자기 말을 더듬는 것을 볼 때가 있다. 통계에 의하면 만 2∼5세 12명 중 1명은 말을 더듬는다고 한다. 다행히 이 아이들 중 75%는 특별한 치료 없이 말 더듬는 문제가 저절로 없어진다. 아이들은 왜 말을 더듬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말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럴 수 있다. 기질적으로 소심하고 자신이 없는 아이일수록 말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말을 할 때 주저하거나 머뭇거릴 때가 많은데 그러다 보니 더듬게 되는 것이다.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있는 아이들도 그럴 수 있다. 이 아이들은 100% 정확하지 않으면 선뜻 표현하려 하지 않는다. 충분히 자신이 없는데 말을 해야 하면 긴장감이 높아져 말을 더듬을 수 있다. 가족력이 있어도 그럴 수 있다.

언어 발달 과정의 다양한 원인에 의해서도 말을 더듬을 수 있다. 첫째, 말하는 속도가 너무 빠르거나 말을 너무 급하게 하는 경우다. 둘째, 아직 충분하게 언어 발달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마음이 급해지거나 흥분했을 때 말을 하게 되는 경우다. 셋째, 머릿속에 생각은 많은데 이 생각이 말로 표현될 만큼 아직 언어가 발달되지 않았을 경우다. 이외에도 주의 집중을 잘 못하는 아이, 즉 산만한 아이들도 말을 종종 더듬곤 한다. 생각이 굉장히 빠르고 순차적으로 차근차근 진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치원에서 점심시간에 무엇을 먹었는지 엄마와 이야기하면서 머리는 벌써 그 다음에 친구와 놀았던 것을 생각하느라 말을 더듬을 수 있다. 결국 인지적 충동성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6세 이전에 나타나는 말 더듬는 현상은 대부분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6세 이후부터 취학 후까지 지속되면 자세한 평가와 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그렇다면 아이가 말을 더듬을 때 부모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무엇보다 아이가 말을 더듬더라도 중간에 개입해서 아이의 말을 끊지 말고 끝까지 들어 주어야 한다. 부모들 중에는 아이가 말 더듬는 것이 답답해서 중간중간에 끼어드는 경우가 많다. “천천히 다시 말해” “발음을 정확하게 해야지” “숨 좀 쉬면서 말 해” “못 알아듣겠잖아” 하면서 자꾸 아이의 말을 끊는다. 이렇게 되면 아이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상태에서 자기표현을 하기가 어렵다. 중간에 중지시켰다가 다시 말하게 하면 아이의 긴장감과 불안감이 더 높아져서 이 때문에 말을 더듬는 것이 더 심해질 수도 있다.

또 아이에게 얼른 말하라고 재촉하거나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아이가 말을 더듬는다면 아이의 생각이 머릿속에서 정리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 주는 것이 좋다. 생각이 채 정리되기도 전에 아이에게 말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모 자신도 천천히 생각을 정리해서 말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것이 좋다. 또한 아이의 말에 응답하기 전에 잠깐 멈춰서 시간을 가졌다가 반응해 준다. 이를 통해서 아이의 말하는 속도와 페이스를 바꿔 줄 수가 있다.

아이들끼리 서로 말하는 경쟁을 하는 상황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부모가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이 서로 먼저 부모에게 자기 일을 말하려고 할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한 아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른 아이가 바로 그 말을 채 가서 자기 말을 하게 되고, 또 그 말을 함과 동시에 다른 아이가 끼어들어 말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말을 하는 것을 경쟁하는 분위기가 되면 급한 마음에 아이가 말을 더듬을 수 있고 더듬는 것이 심해질 수도 있다.

아이가 말을 하는 상황에서 무언의 압박을 주지도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외출했다가 돌아온 엄마가 “할머니께서 오늘 네가 어떻게 지냈는지 엄마한테 다 이야기해 주셨는데…”라며 다 알고 있다는 식의 말을 하면, 아이는 말을 하기 전부터 압박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말을 더 더듬을 수 있다.

요즘처럼 바쁜 사회에서는 부모와 아이가 편안한 마음으로 수다를 떨 시간이 별로 없다. 말을 더듬는 아이일수록 긴장을 이완시킬 수 있는 상태에서 부모와 편안하게 이야기하는 기회를 많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말하는 것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부모는 아이가 말을 더듬는 것에 중점을 두지 말고, 말하는 내용이나 말하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격려와 칭찬을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