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으나 칼과 비슷한 작용을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말(言)입니다. 인쇄된 말인 글도 포함됩니다. 말의 영향력은 멀리, 깊게, 오래 갑니다. 칼보다 훨씬 더 강력합니다. 인터넷, 휴대전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에 살며 우리가 던지는 말은 아날로그 시대에 비하면 원자폭탄의 위력으로 세상을 뒤흔듭니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연일 정치인을 포함한, 이런저런 사람들의 말을 전하고 논평하고 토론합니다. 세상은 말로 넘쳐나고 사람들은 말의 홍수로 인해 크게 상처받습니다. 때로는 말 속에 ‘익사하는(대중의 눈에서 강제로 멀어져야 하는)’ 사람들도 생깁니다.
반면 이렇게 위험한 작용을 하는 말을 도구로 쓰는 용감한(?)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정신분석가들입니다. 외과의사의 수술용 메스도 아니고 내과의사의 약도 아니며 영상의학과 의사의 방사선도 아닌, 누구나 다 하는 말을 가지고 환자를 치료합니다. 말이 무엇입니까? ‘사람의 생각이나 느낌 따위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쓰는 음성 기호’입니다. 더 나아가 말은 마음이 마음에 영향을 주는 파장입니다. 정신분석적 태도의 기본은 단연 진정성이지만 말로 대부분 표현됩니다. 대화는 진실해야 합니다. 중립성도 중요합니다. 환자가 하는 말을 비판하면 안 됩니다. 옳고 그름의 판단보다는 말 뒤에 숨은 의미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해의 기반은 공감입니다. 이해한 바를 환자에게 되돌려 줄 때도 상대의 이해를 돕도록 말을 잘해야 합니다. 이해할 수 없다면 대화는 실종됩니다. 정신분석적 대화는 약과 같은 효과를 냅니다. 뇌 연구에서도 밝혀졌습니다.
역설적으로, 독한 말보다는 해학(諧謔), ‘익살스럽고 풍자적인 말이나 행동’의 힘이 더 강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말의 칼로부터 지키면서 동시에 품격을 잃지 않는 도구로서 해학과 풍자는 쓸모가 큽니다. 이웃 나라에 눈을 하나 잃은 총리가 있었습니다. 어떤 고약한 정치인이 두 눈으로도 어려운 정치를 과연 잘할 수 있겠냐고 비웃자 그가 이렇게 받아쳤습니다. 일목요연(一目瞭然), 한번 보고도 대번에 알 수 있다. 해학은 ‘말 뒤의 말’을 쓰는 겁니다.
세상이 어지럽습니다. 어지러운 세상을 더 어지럽히는 미세먼지에는 정치인들의 험한 말들이 포함됩니다. 현재의 정치 수준이 끊임없이 서로 주고받는 공격과 재공격일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말씀들이라도 좀 관리해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어쩌다가 한번 해학과 풍자로 무장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말 한마디가 등장한다면 미세먼지 없는, 맑은 하늘에 비길 수 있지 않을까요. 말이 칼로 둔갑하는 이유는 공감 능력의 부족이나 결핍입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 들어가서 아주 약간 잠시 이해하려 노력했다면 “당신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라고 일단 한마디를 던질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대화의 기초공사가 이루어진 겁니다. 그런데 그 한마디가 요즘 너무 귀합니다. 공감은 대화의 항해를 순조롭게 해주는 방향타입니다.
방향타를 잃은 정치권의 험한 말들을 대중 매체가 확대 재생산하지 마시고 아예 무시해버리기를 제안합니다. 되풀이되는 것을 읽고 보면 국민 정신건강에 폐해가 됩니다. 좋은 기사를 게재하고 감동적인 프로그램을 방영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의 낭비입니다. 그래도 계속 그렇다면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이 남긴 말처럼 “정치꾼과 기저귀는 자주 갈아줘야 한다. 같은 이유로”를 크게 써서 벽에 붙여놓는 국민이 늘어나지 않을까요. 약이 되는 말, 칼이 되는 말. 우리 모두 사려 깊게 언행을 살피며 살아 봅시다. 21세기인 지금 막말을 뱉어내는 분들의 얼굴에, 어쩔 수 없이 그때였기에 가릴 것 못 가리고 살아야만 했던 인류 조상님들의 모습이 겹쳐 떠오릅니다. 약이 되는 말은 늘어나고 칼이 되는 말은 줄어드는 세상이 옳은 세상이 아닐지요. 그렇게 만드는 것이 올바른 정치의 길이 아닐지요.
정도언 정신분석가·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