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72개 기관중 66% 1년 5회 이하 별다른 프로그램 없이 업무 설명만, 외교-통일부는 한번도 안해 작년부터 기관평가항목서 빠지자… 일부 “추가 업무 굳이 할 이유 없어”
“업무 설명만 듣고 왔어요.”
2017년 9월 경북 김천의 조달청 조달교육원. 김천지역 중학생 4명을 대상으로 진로체험 실습이 진행됐다. ‘실습’이란 이름을 내걸었지만 별다른 프로그램은 없었다. 교육원은 학생들에게 2시간 동안 조달청 업무를 설명했다. 이듬해 조달청에는 단 한 명의 학생도 찾아오지 않았다. 조달청은 “우리 업무는 소방청이나 경찰청처럼 국민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없어 학생 진로와 관련해 마땅히 할 만한 게 없었다”고 밝혔다.
정부가 학생들의 진로체험 기회를 넓혀 주기 위해 마련한 제도가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다. 진로교육 실습 프로그램 운영과 관련한 규정이 마련된 지 3년이 지났지만 일부 부처는 지난해 한 차례도 실습 기회를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진로체험’ 프로그램은 2016년 교육부가 ‘행정기관 등의 진로체험 제공에 관한 규정’을 마련하면서 시작됐다. 정부가 나서서 미래의 주역인 초중고교생에게 각종 진로체험을 확대하겠다는 취지였다. 당시 기관별로 연간 10번 이상은 실시해야 학생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시행 결과는 부실했다. 외교부, 통일부는 제도 도입 후 한 번도 학생들에게 진로체험을 제공하지 않았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회, 주관 부처인 교육부는 31회를 운영했다. 전체 진로체험 제공 횟수도 2017년 4만7451회에서 지난해 1만9786회로 대폭 감소했다. 진로체험을 받은 학생도 같은 기간 163만9383명에서 78만3374명으로 줄었다.
진로체험 횟수가 급감한 이유는 ‘기관 평가’와 연관이 있다. 제도 도입 당시 기획재정부는 기관 평가지표에 ‘진로체험’ 실적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평가지표에서 진로체험 지원이 빠졌다. 부처나 공공기관들이 굳이 학생들을 데려다 진로체험을 시킬 동기가 사라진 것이다. 한 부처 관계자는 “진로체험 프로그램 담당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누군가 추가로 업무를 맡아야 한다”며 “평가지표에 명시돼 있지도 않으니 굳이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각 기관을 독려해 진로체험 프로그램을 활성화할 방침이다. 교육부는 실제 진로체험을 제공한 횟수는 공지된 내용보다 더 많다고 해명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2018년 자료는 학생 진로체험을 신청하는 ‘꿈길’이라는 정부 사이트에 등록된 행정기관의 실적만 더한 수치”라며 “‘꿈길’에 등록하지 않은 공공기관을 포함하면 진로체험 제공 횟수가 크게 늘어난다”고 말했다.
강동웅 기자 lep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