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동 여경 논란’에 체력시험 도마 올라… 공무원체력학원 가보니
20일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한 체력시험전문학원에서 본보 신아형(왼쪽), 구특교 기자가 경찰시험 준비생들과 함께 체력 훈련을 하고 있다. 최근 ‘대림동 여자 경찰 사건’이 불거진 후 여경의 체력시험 기준이 남자에 비해 낮아 현장 대응력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20일 오후 10시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공무원 체력시험 전문학원. 키 180cm, 몸무게 77kg인 본보 구특교 기자(29)가 누운 자세로 다리를 위로 들어올리는 복근운동을 하다가 힘에 부쳐 바닥에 다리를 내려놓자 강사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날 오후 9∼11시 구 기자는 학원에서 경찰 지망생 25명과 함께 체력훈련 수업을 받았다.
여자들도 함께하는 훈련이라는 얘기를 듣고 ‘해볼 만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기자의 예상은 빗나갔다. 윗몸일으키기, 팔굽혀펴기, 다리 들어올리기 등의 근력운동이 쉴 새 없이 이어지자 기자의 입에선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팔다리도 후들거렸다. 기자는 1시간 만에 훈련을 포기했다.
복근운동을 하며 힘들어했던 기자와 달리 여자 준비생들 대부분은 강사의 구령에 맞춰 까다로운 동작들을 소화해냈다. 기자를 제외한 25명 모두는 2시간의 훈련을 끝까지 마쳤다. 25명 중 14명은 여성이었다. 수강생 양수정 씨(28·여)는 “다칠 정도가 아니라면 한계를 느껴도 버틴다. 고시원에서도 시간 날 때마다 팔굽혀펴기와 스쾃을 한 게 도움이 된다”고 했다.
경찰 입시 전문가들에 따르면 여성 응시자들 간에 필기시험 성적의 편차는 크지 않다고 한다. 전체 배점의 25%를 차지하는 체력평가가 당락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여자 경찰 지망생들은 남자 못지않은 강도로 체력평가를 준비한다. 노량진에 있는 30여 곳의 체력학원에서는 대부분 남녀가 함께 훈련한다.
경찰 체력시험에서는 △100m 달리기 △1000m 달리기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 △좌우 악력 등 5가지를 측정한다. 평가 기준에는 남녀 간의 차이를 둔다. 여성의 경우 100m 달리기에서 10점 만점을 받으려면 15.5초 이내에 달려야 한다. 이 기록은 남자 기준으로는 5점에 해당한다. 여자의 경우 바닥에 무릎을 대고 팔굽혀펴기를 한다는 것 때문에 논란이 되기도 했다. 남자는 무릎을 떼고 1분에 58회 이상을 해야 10점이지만 여자는 무릎을 대고 55회 이상을 하면 10점이다.
여자 준비생들은 “여자들의 체력평가 기준이 낮다 보니 오히려 여자 경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쌓인다”고 입을 모았다. 준비생 김모 씨(27·여)는 “가족들조차 ‘여경은 범인 잡는 현장에 내보내지 않는다’고 하는 등 잘못된 인식을 견디기 힘들다”며 “무릎을 떼고 팔굽혀펴기를 하라고 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체력기준이 강화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자 경찰로 구성된 경찰 내 학습모임인 ‘경찰젠더연구회’는 21일 “대림동 여자 경찰 사건이 여성 경찰에 대한 혐오의 확산으로 오용돼서는 안 된다”는 입장문을 내놨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현재 경찰 채용 방식은 남녀를 나눠 뽑기 때문에 여자 지원자에 대한 체력기준을 강화하는 것을 여성에 대한 차별로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날 민갑룡 경찰청장도 선진국 수준에 맞게끔 (여자 경찰의) 체력평가 수준을 점점 높여 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