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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구자룡]‘흔한’ 희토류

입력 | 2019-05-23 03:00:00


희토류(稀土類·Rare Earth Elements)는 이름과 달리 전혀 희귀한 자원이 아니다. 어떤 특정 광물이 아니라 원소주기율표의 원소 중 17개를 통칭하는 것으로 200여 가지 광물에 들어 있다. 18세기 중반 세륨을 시작으로 차례로 발견됐는데 당시 기술로 추출이 쉽지 않아 ‘희귀한 불용성 금속 산화물’로 불렸다. 후에 매장량이 매우 많은 것이 확인되고 추출 및 정련 기술도 발전했으나 이름은 바뀌지 않았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인도로 잘못 알아 원주민을 ‘인디언’으로 부른 뒤 그대로 부르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가장 매장량이 적다는 툴륨 루테튬도 인류가 수천 년간 사용해 온 금보다 많다.(‘희토류 자원 전쟁’·김동환)

▷희토류 중 에르븀은 광섬유에 미량만 첨가해도 빛 손실이 1%로 줄어든다. 스마트폰과 광섬유, 전기 및 하이브리드 자동차, 풍력발전, 태양열발전 등 첨단 전자제품과 설비에 희토류는 꼭 필요하다. 이런 ‘첨단산업의 비타민’을 중국이 압도적으로 많이 생산하는 것은 기술력보다 추출 분리 제련 과정에서 방사성물질이 나오는 등 환경 문제가 심각하고 비용 때문에 다른 국가들은 생산을 억제하기 때문이다.

▷덩샤오핑이 “중동에 석유가 있다면, 중국엔 희토류가 있다”라고 호언한 것이 빈말은 아니다. 지난해 전 세계 희토류 생산 중 중국(12만 t)이 72%를 차지했다. 호주(12%) 미국(9%) 미얀마(3%) 인도(1.1%) 등이 뒤를 잇는다. 2010년 9월 일본과 센카쿠 열도 영유권 갈등을 빚을 때 희토류 수출 중단으로 일본을 압박해 재미를 봤던 중국은 이번 미중 무역전쟁에서도 희토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구글 인텔 퀄컴 등이 화웨이에 소프트웨어 공급을 중단키로 하자 시진핑 주석은 20일 오전 장시성의 희토류 생산 공장을 시찰하고 오후에는 대장정 출발 기념비에 헌화했다.

▷중국은 한국에 대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 노르웨이의 류샤오보 노벨 평화상 수여에 대한 연어 수입 금지, 영토 갈등을 빚은 필리핀으로부터 바나나 수입 제한 등 거리낌 없이 보복을 해왔다. 하지만 희토류 카드가 미국에도 먹혀들지 미지수다. 희토류 매장량은 중국이 37.9%로 가장 많지만 미국(15%) 독립국가연합(21%) 등도 상당량을 갖고 있다. 미국 화학기업 블루라인은 호주 희토류 생산업체와 합작으로 텍사스주에 희토류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희토류가 ‘무역전쟁 보검’이 아니라 세계 2위 경제대국 중국의 신뢰를 더 추락시키는 양날의 칼이 될 수도 있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