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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ILO핵심협약 3개 비준 착수… 재계 “부작용 우려”

입력 | 2019-05-23 03:00:00

국회 동의-법개정 동시 추진… 해고자 노조-전교조 합법화 수순
재계 “노조 권한만 강화될 위험”… 야권 반대, 국회동의 쉽지 않을듯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법 개정을 동시에 추진하기로 했다. ILO 핵심협약 비준을 두고 노사정 대타협이 무산되자 정부가 ‘선(先)입법, 후(後)비준’이란 기존 입장을 뒤집은 것이다. 야당과 경영계는 정부가 사실상 선(先)비준 방침을 밝힌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국회 논의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 비준과 법 개정 ‘동시 추진’으로 선회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2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이 아직 비준하지 않은) 4개 핵심협약 중 3개 협약의 비준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3개 협약은 결사의 자유와 관련된 87호와 98호, 강제노동 금지 조항인 29호다.

87호와 98호 협약을 비준하면 △해고자와 실직자 △5급 이상 공무원과 소방공무원 등의 노조 가입이 가능해진다. 또 노조 설립 신고 제도가 폐지돼 현재 법외노조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합법화될 수 있다.

문제는 이 협약 내용이 노조법과 교원노조법 등 국내법과 충돌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협약을 비준하려면 관련법도 개정해야 한다. 이 장관은 “올해 정기국회에 비준동의안과 관련법 개정안을 함께 제출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29호 협약의 경우 관련법 개정 없이 비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일각에선 강제노동을 금지한 29호 협약을 비준하면 현재 사회복무요원(옛 공익근무요원)과 병역특례요원들이 모두 군대에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9월 아시아경기에서 금메달을 따 병역 혜택을 받은 손흥민 선수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용부 관계자는 “ILO는 공공사업 및 경제개발을 목적으로 대체복무제도를 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며 “우리의 보충역 제도를 문제 삼는 게 아닌 만큼 본인이 현역과 사회복무요원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끔 허용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정치적 견해 표명에 따른 강제노동을 금지한 105호 협약은 비준하지 않기로 했다. 사상범에게 징역형을 내릴 수 있는 국가보안법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 야당 “매우 위험하고 무책임한 결정”

고용부는 노사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비준동의안과 관련법 개정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영계는 정부가 기존 입장을 뒤집어 정책의 신뢰성을 떨어뜨렸다며 반발한다.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협약 비준을 밀어붙이면 노사 갈등만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국제기준에 맞게 파업 중 대체근로를 금지한 것에 대한 보완 입법이 이뤄진 뒤 협약을 비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조의 권한 강화에 맞서 경영계가 방어권을 충분히 확보한 뒤 협약 비준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주요 선진국 및 경쟁국처럼 파업 시 대체근로를 허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쟁의행위의 찬반투표 절차 개선, 부당노동행위 시 형사처벌 규정 폐지 등 경영계 목소리를 법 개정 시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야당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인 자유한국당 김학용 의원은 “(ILO 핵심협약 비준을)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무책임하다”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몰아닥칠 후폭풍을 감안한다면 ‘경제 폭망’ 문재인 정부가 가볍게 움직일 사안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한국당 소속 환노위원들도 별도 입장문을 통해 “국내법 충돌에 따른 국민 혼란과 경제·노동 시장에 미치는 엄청난 영향을 고려하면 ‘선입법, 후비준’ 순서로 진행하는 게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고용부 관계자는 “노사 간 의견 차가 워낙 커 관련법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비준동의안도 처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계 우려대로 비준동의안만 먼저 처리되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세종=송혜미 1am@donga.com / 배석준·장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