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토요일이었다. 급하게 회사로 뛰어나오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극단적 선택 그 자체가 그의 삶과 마찬가지로 역사를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범인(凡人)도 세상을 떠난 뒤 뒤늦게 그 사람의 진가를 알아보고 안타까워하는 일이 적지 않다. 하물며 대통령을 지낸 고인이야 말할 것도 없다. 감히 비유한다면, 순교자처럼 몸을 던져 그는 자신의 뜻을 지켜냈다. 노무현정신과 함께 ‘폐족(廢族)’은 부활했고, 마침내 친구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어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공식 발표 중인 문재인 대통령. 동아일보DB
‘부당한 공격’이라는 언론관
추도식에선 좋은 말만 하는 법이다. 노무현 10주기에 쓰는 이 글은 자성이 담겨야 마땅할지 모른다. 최근 공개된 그의 2007년 3월 친필 메모엔 ‘대통령 이후, 책임 없는 언론과의 투쟁을 계속할 것.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정부를 방어할 것’이라는 언론관이 적혀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친필 메모. 국가기록원 제공
그 무렵 나는 ‘선군혁명의 나팔수’라는 칼럼에서 대통령의 언론관을 비판한 적이 있다. 국경 없는 기자회의 연례보고서를 인용해 ‘헌법재판소가 언론 자유에 반(反)하는 신문법에 위헌 결정을 내린 것은 신문 시장을 통제하려던 노무현 대통령 측의 패배’라고 소개했다.
노무현 정부로선 당연히 보수언론과 보수정당이 못마땅했을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을 추구하는 깊은 뜻을 몰라보는 부당한 공격이라고 보였을 터다. 지금 고인을 향한 추모 열기 속에도 다시는 ‘부당한 비판’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결연한 의지가 역력하다. 현 정부가 하는 모든 것이 ‘촛불정신’과 함께 노무현정신 이어받기에 있다고 믿는 듯하다.
‘인용 저널리즘’으로 돌아보면
고 노무현 대통령의 진심, 그리고 인간적 매력을 인정한다. 그러나 노무현정신 속에 이 세상 선의는 다 포함시키면서 참여정부의 공과(功過)를 제대로 보지 않는 건 무책임하고도 위험하다. 실용과 국익을 우선시한 성과를 높이 평가한다면, 무능과 이념과잉으로 인한 과오 역시 간과해선 안 된다. 고인에 대한 숭배가 참여정부 숭배로 이어질까 두려워서 하는 말이다.
이때, 참여정부의 실패 부분을 내 입으로 거론하는 건 불안하다. 그래서 ‘인용 저널리즘’을 활용해 객관적으로 판단해보기로 했다(저널리즘까지 될지 모르지만 그냥 만들어본 용어다). 가장 안전한 알리바이가 될 수 있는, 이낙연 총리의 과거 발언을 통해서다.
2006년 3월 17일 민주당 원내대표 자격으로 청와대를 찾은 이낙연 현 국무총리(왼쪽 두 번째). 동아일보DB
국회를 존중하지 않는 청와대
-코드 인사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안이 2003년 9월 23일 국회에서 부인됐다. 이낙연은 “인준 실패에 대한 청와대의 첫 반응이 ‘안타깝다’는 것은 선후(先後)가 바뀐 것”이라며 “‘국회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의사를 먼저 표명해야 옳다”고 지적했다.
-2004년 총선을 앞둔 2월 이낙연 총선기획단장은 “노 대통령이 잘하는 것 하나 없지만 민주당을 분당시킨 한 가지 죄만으로도 결단코 성공할 수 없다”며 “민주당이 살아야 다시는 이 땅에 배신자가 나타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2004년 이해찬 총리의 ‘동아·조선일보는 역사의 반역자’ 발언에 대해 10월 28일 이낙연은 “5·16쿠데타의 주역이고 ‘유신본당’인 김종필 전 국무총리 아래에서 교육부장관으로 일한 이 총리는 역사의 반역이 아니냐”며 “지도자의 언동은 균형과 품격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정권 편향적 수사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2005년 1월 대한체육회장 선거를 앞두고 코드인사를 위해 검찰이 이연택 회장에 대한 내사에 들어가자 이낙연은 “검찰이 선거에 영향을 미칠 만한 움직임을 내보였다”고 비판했다(결국 2월 김정길 체육회장이 탄생했다).
2005년 11월엔 신건 전 국가정보원장의 도청 개입 혐의에 대해 수사 받던 이수일 전 국정원 2차장이 자살했다. 이낙연은 “김대중 정부를 도덕적으로 흠집 내려는 정치적 의도에 따라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고 ‘강압 수사’ 문제를 제기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무리였다면, 재임 시에도 마찬가지였다).
-대통령의 설화(舌禍)에 대해서도 이낙연은 할 말을 했다. 2005년 3월 청와대 만찬에서 그는 대통령의 대일(對日) 강경발언을 두고 “문제의식이 있으니까 말씀한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말을 아껴 달라. 대통령의 말은 영향력이 있지만 비용도 있다”고 했다.
대연정은 위험한 발상, 정부는 낙제수준
-2005년 7월 대통령이 제안한 대연정을 협치와 통합의 관점에서 다시 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당시는 그렇지 않았다. 이낙연은 “대통령이 일정한 조건(지역주의라는 기득권을 포기한다면)을 붙여 다른 정치 세력에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지나치게 자의적이고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참여정부에 대한 이낙연의 총체적 평가는 2006년 2월 22일 국회에서의 비교섭단체 대표발언에서 알 수 있다. 그는 “합리의 눈으로 보고 미래지향의 마음으로 생각하려 한다”고 이렇게 연설했다.
“내일모레면 노무현 정부 출범 3년이다. 불행하게도 참여정부는 낙제 수준이라는 진단마저 나왔다. 최대의 실패는 양극화 확대와 사회분열이라고 규정한다…정권 담당자들의 무능과 미숙이 참여정부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역량이 특정 가치에 대한 과도한 집착으로 더욱 제약됐다.
분열과 갈등 키운 대통령 리더십
…게다가 분열과 갈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분열의 리더십, 전투적 리더십은 정부의 어떤 시책도 국민의 광범한 동의를 얻기 어렵게 만들었다…어느 한쪽의 것을 부당하게 빼앗아 다른 쪽에 주는 방식은 해법이 되지 못한다. 빈곤의 하향 평준화만 가져올 우려가 있다.
…특정 이념에 집착해서는 새롭게 제기되는 복잡다기한 내외 문제들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한미동맹은 한국 외교의 축이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자주를 내세워 미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하면서도 실제에서는 미국에 속절없이 양보해왔다. 일시적으로는 소수 국민의 기분을 좋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국익을 지키고 키우는 데는 실패해 왔다.
…사회통합을 이루고 그 바탕 위에서 국가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현하는 데 공헌하고 싶다. 민주당은 작지만 강한 정당이다.”
과거 정권은 모두 공과가 있다
이낙연의 국회 연설은 현재의 국회에서 야당이 그대로 읽어도 어색하지 않은 대목이 즐비하다(이 총리도 다시 보면 놀랄 것이다). 안타깝게도 참여정부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노무현정부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2006년 10월 열린우리당에서 민주당으로의 통합론이 나오자 이낙연은 “큰 틀에서 통합에 공감하지만 열린우리당 창당 주역들은 확실한 자기 정리를 해야 한다. 통합신당이 ‘도로 민주당’이 아니라 ‘도로 열린당’이 될까 걱정”이라고 했다.
우여곡절을 거쳐 민주당은 다시 합쳐지고 또 갈라지고 많이 변하긴 했다. 도로 무슨당이든, 당시의 공(功)과 함께 적폐도 제대로 평가해야 대한민국은, 역사는 진보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노 전 대통령 뿐 아니라 이승만, 박정희,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의 공과도 마찬가지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