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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리 기자의 여기는 칸] 송강호·봉준호의 18년 영화 이야기

입력 | 2019-05-24 06:57:00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기생충’의 주역인 연기자 송강호(왼쪽)와 봉준호 감독이 23일(한국시간) 서로의 존재에 대해 “자부심”이라고 말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송강호 “한국영화 또 다른 변화 기대
봉 감독은 내가 정체되지 않게 자극”
봉준호 감독 “양극화 주제 다들 공감
오랜만에 국내 작업…온 에너지 쏟아”

봉준호 감독(50)과 배우 송강호(52)는 ‘영화적 동지’로 불릴 만하다. 2002년 ‘살인의 추억’ 촬영으로 처음 만난 뒤 햇수로 18년 동안 한국영화의 도전과 변화를 이끌어왔다. 네 번째 만남인 ‘기생충’으로 새로운 ‘막’을 연다. 23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칸에서 만난 이들이 좀처럼 들려주지 않았던, 깊은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 송강호 “봉준호와 동시대를 사는 건 자부심”

“확실히 칸에서 인지도가 높다”는 한 유럽 영화제 관계자의 말처럼, 송강호는 유럽과 북미 등 해외 매체의 인터뷰 요청으로 분주한 일정을 보내고 있다. ‘기생충’에 대한 호평의 방증이다. 그는 “영화에 대한 특별한 예우와 대우를 느낀다”며 “뿌듯하다. 지난 10년간 쌓은 한국영화에 대한 해외의 신뢰,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느낀다”고 자부했다.

그는 봉준호 감독과 작업에서 늘 새로운 결실을 맺는다. 첫 만남인 ‘살인의 추억’부터 1300만 관객이 택한 ‘괴물’, 북미·프랑스 자본과 합작한 ‘설국열차’까지 그렇다. 안주하지 않는 감독과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그는 영화예술가로서 자긍심과 자부심을 주는 존재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내가 정체되지 않게 하는 존재다. 날 깨어있게 한다. 파트너로서 20년간 자랑스러운 자극이 됐고, 동어반복이 아닌 늘 다른 세계를 추구하는 그를 보면 내가 부끄러워진다.”

이어 ‘기생충’의 성과가 한국영화계에 긍정적인 자극이 될 거라고 말했다. “‘살인의 추억’이 리얼리즘의 성취였다면, ‘기생충’은 철학적으로 더 성숙하다”며 “1990년대 후반부터 봉 감독과 박찬욱, 홍상수, 이창동 감독 등이 이끈 한국영화 르네상스로부터 20년이 지났는데 ‘기생충’을 통해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는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기생충’이 ‘계급의 화두를 꺼냈다’는 분석이 따르지만 그는 “표면적으로는 계층 이슈를 다루는 듯하지만, 인간 자존감 붕괴의 이야기다”며 “인간에 대한 존중,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에 관한 작품”이라고 밝혔다.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 봉준호 “‘살인의 추억’ 때처럼 충격적 제목”

‘기생충’은 6월5일 프랑스에서 개봉한다. 봉 감독은 “난리”가 났다고 말했다. 칸에서 각국 배급사들이 자신을 두고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영화제의 주인공은 역시 감독이란 사실이 엿보인다.

봉 감독은 해외 영화관계자들의 다양한 반응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다. “공식 상영 뒤 영국과 미국 심지어 홍콩의 지인들 반응이 신기하게도 비슷했다”며 “양극화 이야기여서 국적을 떠나 즉각적으로 공감하는 듯하다”고 했다.

봉 감독은 2017년 칸 경쟁부문에서 ‘옥자’를 선보이고 불과 2년 만에 다시 초청장을 받았다. “돼지(옥자) 4년, 기차(설국열차) 4년을 보내고 나니 작품 주기를 짧게 하고 싶었다”는 그는 “이준익 감독님이 ‘젊은 감독이 넉 달에 한 편씩 찍어야지!’ 말하는데, 1년10개월 만에 ‘기생충’을 내놨으니 이제 칭찬을 받고 싶다”며 웃었다.

‘기생충’의 시작은 ‘설국열차’가 개봉하기 전인 2013년이다. “부자와 가난한 자, 그리고 두 개의 집”이란 설정으로 처음 구상했다는 그는 “가난한 가족도 적당히 뻔뻔하고, 부잣집 가족도 누구를 해코지하는 ‘악의 왕국’ 사람들이 아니다”며 “특별한 악당이나 악인이 없음에도 그 정도(결말) 상황으로 치닫는 것에서 (관객이)받는 두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봉 감독은 2년 전 칸에서 논쟁의 중심에 섰다. 당시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인 넷플릭스가 제작한 ‘옥자’를 칸 경쟁부문에 초청하는 게 적합한지를 두고 논쟁이 일었다. 그는 “그땐 칸에서 영화에 관해 이야기할 틈도 없었다”며 “‘기생충’은 ‘옥자’의 5분의1 수준 제작비(135억원)로 내 몸에 딱 맞는 듯한 환경에서 작업했다”고 밝혔다. 이어 “에너지를 인물들에 투영해 마치 현미경처럼 파고들었다”며 “친정집에 돌아온 기분으로 작업했다”고 밝혔다.

제목을 정하는 과정도 들려줬다. “비하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어쩌나, 약간의 두려움 속에서 주변에 ‘마음껏 제목을 제안해 달라’고 했다”는 그는 “‘해피 투게더’도 있었지만 왕자웨이(왕가위)의 작품도 있고, 또 ‘살인의 추억’ 때 이미 제목으로 신랄한 비판을 들어 ‘기생충’으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칸(프랑스)|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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