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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처분소득 10년만에 감소… 소득주도성장 대신 지갑만 얇아져

입력 | 2019-05-24 03:00:00

통계청 1분기 가계동향 분석




서울 성동구에서 김모 씨(43)가 운영하는 작은 횟집엔 하루 3, 4팀 정도의 손님만 방문한다. 가게가 작은 골목에 있다 보니 찾아오는 손님만으로는 매상을 올리기 어려워 배달 전문 애플리케이션으로 회 배달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어렵다.

김 씨의 한 달 매출은 1000만 원 정도지만 활어 등 식자재 비용과 월세, 전기요금 등 각종 공과금을 빼고 손에 쥐는 순수익은 150만 원 남짓이다. 이마저도 올해 2월 직원을 해고하고 아내와 일하면서 이익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전까지는 적자를 면하기 어려웠다.

김 씨는 “식당 자영업을 하는 2명 중 1명은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다고 보면 된다”며 “돈을 못 버니 좋은 상권으로 못 가고 유동인구가 적은 지역에서 장사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살림살이가 점점 더 바닥으로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 ‘소득 절벽’으로 밀리는 자영업자들

통계청이 23일 내놓은 1분기(1∼3월) 가계동향에서 최저소득층인 하위 20%(1분위) 가구의 소득이 5개 분기 연속 감소했고, 그중에서도 근로소득은 역대 최대 규모로 줄었다. 다만 1분위 가구의 사업소득은 전년 동기와 비교해 10.3% 늘어난 게 눈길을 끈다. 통계청은 가계 사정이 개선됐기 때문이 아니라 하위 20∼40%(2분위)에 속해 있던 자영업자들이 최저소득층으로 추락하면서 나타난 착시현상으로 풀이했다. 실제로 올 1분위 가구 중 자영업자를 포함한 근로자 외 가구 비중은 72.9%로 지난해 1분기보다 0.7%포인트 늘어난 반면 같은 기간 2분위 근로자 외 가구 비중은 0.9%포인트 줄었다.

자영업자의 몰락은 식당, 동네슈퍼, 소규모 미용실 등 영세업자들이 한계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소득 하락을 떠받치고 있지만 일해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 상황을 개선하기엔 역부족인 셈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형편이 어려운 자영업 가구가 1분위로 하락하는 것 같다”며 전체적으로 사업소득이 감소세를 보이는 점을 감안하면 자영업 업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자영업자의 소득도 꾸준히 줄고 있다. 전체 사업소득은 지난해 4분기 3.4% 감소한 데 이어 올해 1분기에는 1.4% 떨어졌다.

○ 양극화 여전한데 분배 개선되고 있다는 정부

정부는 공적연금과 정부 지원금 같은 이전소득으로 저소득 가구를 돕고 있지만 실제 가계가 일을 하거나 투자를 해서 버는 돈은 늘지 않았다. 1분기 전체 가구의 근로소득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0.5% 늘어나는 데 그쳤고 사업소득은 1.4% 감소했다. 반면 공적이전소득은 1년 전보다 28.8% 늘었다. 경기 침체로 민간에서 만들어지는 소득 여력이 떨어지고 있음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물가 상승의 영향을 제외하면 사실상 소득은 제자리걸음이다. 실질 근로소득 상승률은 0%로 지난해와 같았으며 사업소득은 1.9% 줄었다. 전체 소득 상승률도 0.8%로 떨어진다. 2017년 3분기(―0.2%) 이후 6개 분기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소득 상위 20%가 쓸 수 있는 돈이 하위 20%의 몇 배인지를 보여주는 5분위 배율은 5.80으로 지난해 1분기(5.95)보다 소폭 완화됐지만 이 역시 양극화가 개선됐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2017년 노사 합의가 지연되며 주요 기업이 지난해 1분기에 상여금을 지급해 올해 1분기 상위 20%의 근로소득이 줄었기 때문이다. 하향 평균화로 양극화가 줄어드는 ‘불황형 분배 개선’이 이뤄진 셈이다. 정부 지원을 뺀 시장소득 격차는 9.9배로 2010년 통계가 만들어진 뒤 역대 최대를 나타냈다.

한편 정부는 이날 소득 분배와 관련한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소득 하위 계층의 소득 감소 폭이 크게 축소되는 등 분배지표가 개선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의 정책 효과를 강조하기 위해 현실과 동떨어진 판단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저소득층의 어려움이 여전해 마음이 무겁다”면서도 “소득 감소 폭이 줄고 2분위 소득이 늘어난 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세종=송충현 balgun@donga.com·이새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