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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인사이트]사모펀드 ‘탐욕의 화신’?… 제도 뒷받침땐 시장 활력주는 ‘메기’로

입력 | 2019-05-24 03:00:00

M&A 시장 강자 떠오른 사모펀드
기업매물 많고 기관 투자수요 급증… 국내 펀드 583개 74조원대로 성장
‘단기실적-먹튀’ 부정적 인식 여전… 롯데카드 인수대상자 교체 소동도
M&A때 구조조정 아픔 있지만 기업 경영합리화 자극 ‘메기’役
규제완화 통해 펀드규모 키우고 시장안정 위한 모니터링 강화해야




윤영호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사모펀드 운용사(GP·General Partners) IMM프라이빗에쿼티㈜의 김영호 수석부사장은 2013년의 일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해 5월 IMM프라이빗에쿼티가 인수한 자동차 와이퍼 생산업체 ㈜캐프의 대표이사로 내정됐을 때의 일이다. 경북 상주시 본사로 출근하던 첫날 집무실에 들어가지를 못했다. 노조가 출근길을 막아선 탓이었다. 하루 이틀이면 끝날 것으로 기대했던 노조의 반발은 계속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는 노조뿐 아니라 지역 상공회의소, 협력업체, 관공서 등도 그에게 싸늘한 눈초리를 보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를 만난 이들은 “서울 강남의 펀드가 우량한 향토기업을 쥐어짜려고 젊은 친구를 대표로 보낸 것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와 함께 만남 자체를 거부하기 일쑤였다.

김 부사장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몸으로 부딪치며 설득 작업을 펼쳐나갔다. 그는 “어려움에 처한 회사를 정상화해 놓으면 임직원뿐 아니라 협력업체나 지역사회에도 좋다”는 말로 설득을 이어갔다. 그 결과 3개월 뒤 그는 대표이사 사무실에 입성할 수 있었다.

이처럼 최근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강자로 급부상하고 있는 사모펀드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롯데그룹이 3일 롯데카드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를 선정하자 롯데카드 노조가 크게 반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롯데그룹은 결국 21일 한앤컴퍼니 한상원 대표가 탈세 혐의 등으로 고발된 사실 등을 들어 롯데카드 우선협상대상자를 우리은행·MBK파트너스 컨소시엄으로 전격 교체했다.

사모펀드가 발달한 미국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부정적인 시각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기업을 인수한 다음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무조건 사람을 자르거나 공장을 팔아 치운다거나 투자도 안 하면서 단기 실적을 올린 뒤 비싸게 팔아 치우는 일부 사모펀드의 행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사모펀드에 ‘금융 자본주주의 탐욕의 화신’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사모펀드 관계자들은 “이는 사모펀드의 전체 모습도 아닐뿐더러 왜곡된 측면이 강하다”고 항변한다. 자본시장이 발달한 선진국에서 사모펀드가 활성화한 것은 그만한 순기능이 있다는 설명이다.

○ 성장 가능성 큰 국내 사모펀드 시장

사모펀드는 특정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집해 경영권 인수 등 다양한 방법으로 투자한 후 자본 이득을 취하는 펀드를 말한다. 투자자들은 주로 연기금이나 금융기관이다. 은행이나 증권회사가 일반투자자들을 상대로 판매하는 공모펀드와 달리 투자자 보호 장치가 거의 없다는 것도 특징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사모펀드가 국내에서 지금보다 더 활성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기업들의 경영 환경 변화와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의 성장전략 등으로 사모펀드에 대한 수요가 급성장하고 있어서다. 우선 국내 대기업들이 2, 3세에게로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핵심 역량을 키우는 쪽으로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해 M&A 물건으로 나오는 기업이 많아졌다. 그 결과로 사모펀드의 역할이 커진 것이다. 여기에 국민연금이나 각종 연기금도 기금 규모가 커지면서 새로운 투자처를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사모펀드는 총 583개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2009년(110개)보다 4배 이상 성장했다. 이들 사모펀드를 운용하는 GP는 256개사(2018년 말 기준)로 전년보다 47개사가 늘었다. 투자금액도 급속히 증가해 지난해 말 현재 사모펀드에 투자를 약정한 금액은 74조5000억 원으로 2009년(20조 원)의 3배가 넘는다.

국내 사모펀드들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면서 해외에서의 성과도 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래에셋그룹이 미래에셋사모펀드를 통해 2011년 7월 국내 패션업체 휠라코리아와 함께 세계적인 골프용품 회사 아쿠시네트를 인수한 일이다. 당시 국민연금은 인수자금의 일부인 1810억 원을 투자해 5년 만에 원금 외에 배당금 1630억 원을 받는 대박을 터뜨렸다. 이런 이유로 최현만 미래에셋대우증권 수석부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토종 사모펀드가 국부를 창출했다”고 자랑한다.

이런 변화를 읽은 젊은 경영컨설턴트 사이에서 사모펀드에 대한 인기도 급증하고 있다. 김 부사장은 “투자자들의 돈을 내 돈처럼 운용하면서 느끼는 책임감도 크지만 M&A 이후 기업 가치를 높였을 때 느끼는 보람, 그리고 성과가 좋을 때 월급 외에 받는 두둑한 보너스가 GP 임직원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라고 귀띔했다.

이들의 수입은 얼마나 될까. GP의 수입은 수수료와 성과보수로 구성된다. 수수료는 GP가 운용하는 각 사모펀드에서 연 1∼1.5%에 해당하는 금액을 분기별로 나눠 받는 게 일반적이다. 성과보수는 초과 수익의 20%를 받는다. 외국의 명문 경영대학원을 나온 젊은 인재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장으로 GP를 꼽는 결정적인 이유다.

○ 금융 안정 위한 모니터링 필요

국내 사모펀드가 더욱 성장하기 위한 선결 과제도 있다. 우선 국내 사모펀드는 질적인 성장 측면에서 여전히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다. 국내 자본 축적과 혁신성장을 위한 자금줄 역할, M&A 시장의 활성화 등을 위해선 국내 사모펀드의 규모가 너무 작다. 지난해 말 현재 GP 256개사 가운데 조 단위의 운용자산(AUM)을 보유한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MBK파트너스가 14조 원을 운용하면서 단연 앞서고 그 뒤를 3조∼4조 원 규모의 한앤컴퍼니와 IMM프라이빗에쿼티가 잇고 있다.

사모펀드의 질적 성장에 필요한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 특히 정부 규제는 간소화할수록 좋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이미 사모펀드 시장에선 내부 규율이 엄격하게 작동하고 있다. 메이저 GP라고 해도 새로운 사모펀드를 설립하려면 과거 운용 실적 및 운용 철학 등에 대해 투자자들로부터 엄격한 검증을 받게 돼 있다. GP들이 M&A를 통해 관리하는 기업 경영에서 투명성과 준법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만 사모펀드 산업이 커질수록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모니터링 기능은 강화해야 한다. 사모펀드가 운용하는 자산 규모가 점점 커지는 데다 M&A를 할 때는 인수금융까지 동원하고 있다. 따라서 금융 사고를 대비해 자금 흐름에 대한 정보는 금융감독 당국이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사모펀드가 M&A한 기업을 되팔 때 경제력 집중이 더 심해지지 않도록 견제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정부가 고민해야 한다. 물론 이들 기업을 인수할 주체는 재벌 계열사밖에 없는 게 현실이긴 하다. 그렇다고 해도 이를 그대로 용인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동안 계속해온 경제력 집중 완화 노력을 뒷걸음치게 하는 일이 될 우려가 크다.

○ 사모펀드, 자본주의 시장의 메기

올 3월 웅진그룹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로부터 다시 인수한 웅진코웨이 주가는 3월 27일 9만770원을 기록한 뒤 내리막을 그리다 20일 7만8000원까지 떨어졌다. 이를 두고 증권가에서는 “사모펀드의 지배구조 개선 효과가 사라진 탓”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적자에 시달리는 윤석금 회장 아들이 최대주주로 있는 ㈜웅진의 렌털사업부를 웅진코웨이가 최근 495억 원에 인수한다고 결정한 것과 관련이 있다”면서 “MBK가 대주주로 있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모펀드가 인수한 기업에서 근무한 임원들은 “인력 구조조정 등 아픔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영 합리화 측면에서는 사모펀드가 분명 국내 기업들에 자극을 주는 ‘메기’ 역할을 한다”면서 “일부 국내 기업에서 나타나는 ‘줄서기’ 같은 사내 정치를 없애고 오로지 실적에만 신경 쓰도록 기업문화를 바꿔주는 것도 인정할 만하다”고 입을 모았다. 또 사모펀드가 인수한 회사에서는 오너 경영자의 친인척이 협력업체나 납품업체를 운영하면서 회사 경쟁력을 갉아먹는 일은 상상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일부 사모펀드에서는 기업 가치를 높이려고 인수 기업의 규모를 키우기도 한다. 신제품을 개발해 매출을 늘리거나 경쟁 회사를 M&A하는 식이다. 단순히 비용만 절감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회사의 장기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조치들이다.

윤영호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yyou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