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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수출국 된 북한…탈북자 중엔 헤로인 ‘덴다’ 경험자 거의 없는 이유는?

입력 | 2019-05-24 15:50:00


동아일보DB

연일 연예인들의 마약 투약 사건으로 시끄럽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연예인 마약 사범 뉴스로 언론이 도배되고 있다. 그럴 때마다 커지는 궁금증은 ‘도대체 저 마약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유통 마약 중 적잖은 물량이 북한산일 것으로 추정한다. 일반적으로 북한이 삼엄한 감시와 폐쇄성으로 인해 ‘마약 청정 국가’일 것으로 착각하기 쉽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북한은 급속히 마약에 빠져들고 있다. 게다가 갈수록 북한산 마약이 한국에 더 많이 유입됨으로써 한반도 전체가 ‘마약 지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자유한국당 소속 윤상현 외교통일위원장은 2012년에 “2010년 국내에서 적발된 외국산 필로폰 8200g 중 57.3%가 중국에서 반입됐고 그중 상당량이 북한산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 외 여러 마약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국내에서 유통되는 필로폰의 최소 30~40%는 북한산으로 추정될 정도다. 이 때문에 마약 전문가들은 정부가 나서서 북한의 마약 실태를 파악해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탈북자와 북한 소식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털어놓은 북한의 마약 제조와 유통, 중독 현황 등을 정리해 본다.

● 북한은 마약 중독 사회

2013년 북한 당국은 형법을 개정해 ‘비법아편재배·마약제조죄’에 대해 사형할 수 있도록 했다. 그만큼 마약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는 뜻이다. 실제로 마약 사법은 급증하고 있다. 단속해야 할 보위성 요원들부터 마약에 빠져 있거나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평양 출신의 한 탈북민은 “2010년에 검사로 일하는 친구가 술을 마시며 ‘전당 전군 전민이 약을 한다’며 개탄하더니 몇 달 후에는 그 친구가 마약을 하더라”라고 말했다.

마약이 얼마나 북한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가에 대한 증언은 넘쳐난다. 최근 입국한 탈북민들은 “어느 마을에 가나 얼음(마약의 은어)을 파는 집은 꼭 있으며 이런 집을 ‘소분집’이라 한다”고 말했다. 북한 내에서 현재 10회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얼음 1g의 가격은 15달러(약 1만8000원) 이하로 거래된다. 한국에서 밀거래되는 가격의 수십분의 1에 불과하다.

가격이 싼 만큼 찾는 사람들도 많을 수밖에 없다. 북한인권정보센터는 2016년 탈북민 1467명을 대상으로 북한 마약 실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 2010~2012년 탈북한 사람들의 13.6%가 마약을 접촉했다. 마약 접촉 비율은 2013년 26.8%, 2014년 25.0%, 2015년 36.7%로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얼마 정도의 북한 사람이 마약을 사용할까. 이 질문에 2010년 이전 탈북자의 35.7%가 “10%가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2014년 탈북자의 경우 ‘10% 이하’라고 응답한 비율은 16.2%에 그쳤다. 이들의 27.8%가 “10~30%가 마약을 사용한다”고 대답했고, 나머지 56%는 “30% 이상의 북한 주민이 마약을 사용한다”고 말했다.

똑같은 질문에 2016년 탈북한 2명의 대답은 충격적이다. 이들은 “북한 주민의 90% 이상이 마약을 사용한다”고 답했다. 이 대답이 과장됐을 가능성도 있지만, 북한의 조사 결과는 마약 사용이 해마다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쩌다 북한이 이렇게 된 것일까.

● 국가 차원에서 마약을 양성하다

사실 북한은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마약 청정 지대였다. 그러다 1980년대 중반 북한 중앙당 간부들에게 건강 치료용으로 필로폰이 공급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평양 출신의 고위 소식통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의 경우 매달 1, 2알의 필로폰이 든 알약이 ‘뇌출혈, 뇌혈전 예방약’ ‘피로 회복제’ ‘건강치료제’ 등의 이름으로 지급됐다”며 “간부들도 이 약이 마약이란 걸 알았다”고 증언했다. 당시 70, 80대 고령의 간부들이 증가하며 건강 문제가 자주 발생하자 김정일의 지시에 따라 이런 조치가 내려졌을 가능성이 높다.

1990년대 초반부터는 국가 차원에서 양귀비를 대대적으로 재배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1980년대부터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도별로 경작지를 10㏊ 혹은 20㏊ 규모로 할당하여 재배했다”고 말했다.

구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한 후로는 외화를 벌어들일 목적으로 마약 밀매를 시작했다. 김일성의 건강을 책임졌던 만청산연구원 출신의 한 탈북자는 “1990년 금수산의사당 경리부 당위원회가 ‘백도라지’(양귀비의 북한식 표현) 농장을 맡는 것에 대한 교시를 전달하기도 했다”고 증언했다. 당시 김일성은 마약 생산을 “미 제국주의와 싸우는 새로운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등 적국을 마약에 중독시켜 자본주의 사회를 마비시키고, 북한은 돈도 벌어 사회주의를 지킬 수 있는 일석이조의 사업이란 논리였다.

이후 북한의 북부 지역 농장들마다 일정 규모로 양귀비를 재배했다. 양귀비 진액(아편)을 채취할 때엔 학생들까지 동원했다. 이렇게 전국에서 만든 아편은 평양에 집결돼 아편으로 제작됐다. 당시 상황에 정통한 한 탈북민은 “평양 외곽의 상원군에 생산기지가 있었는데, 국가과학원 상원분원이란 외피를 쓰고 있었다”며 “이곳에서 생산된 헤로인은 항불안제인 ‘디아제팜’과 외형이 똑같아 구별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보위사령부 등 최정예 공작원들이 홍콩과 마카오 등의 동남아 마약조직과 접촉해 판로를 개척했는데 신분이 드러날 경우를 대비해 철저히 개인별로 움직였다”고 증언했다.

● 평양 고위층에 퍼진 헤로인 ‘덴다’

이후 북한산 헤로인이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미국은 본격적인 제재 움직임을 보였다. 북한 당국은 1990년대 중반 상원분원을 폭파시켜 흔적을 없앴다. 하지만 이곳에서 이미 만들어 놓은 대량의 헤로인이 있었다. 바로 이 헤로인이 1990년대 중후반부터 북한 내부 부유층에 퍼지기 시작했다.

헤로인을 북한에선 ‘덴다’ ‘총탄’ 등으로 불렀다. 디아제팜과 똑같은 흰색의 알약 외에 특이하게 빨간색으로 된 덴다도 있었다. 상원분원에서 만든 덴다는 3, 4개 루트를 통해 평양에 흘러나왔다. 이 마약은 주로 젊은 아가씨들이 부유한 청년들을 상대로 팔았다.

덴다 구입자들은 이것을 부숴 가루로 만든 뒤 코로 흡입했다. 함유량에 따라 80캄마, 120캄마, 240캄마로 구분됐는데, 2000년 평양에서 거래된 덴다 120캄마 한 알의 가격은 2달러로, 부유층이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이 때문에 평양의 극소수 부유층과 원산 신의주의 무역회사 사장 정도만 헤로인을 경험했다. 탈북자 중에 덴다를 경험한 사람이 거의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 헤로인에 이어 필로폰 ‘얼음’ 퍼져

2003년경 상원분원이 만든 덴다의 재고가 바닥이 났다. 이때 새로 등장한 것이 ‘아이스’ ‘얼음’으로 불린 필로폰이었다. 헤로인과 필로폰은 완전히 상반되는 마약이다. 헤로인은 중추신경을 억제해 그 자체로만 쾌락을 느끼게 하는 반면 필로폰은 강력한 중추신경 흥분제다. 상반된 마약이 시점을 두고 북한에 등장한 이유는 식량난 악화와 연관된다.

상원분원이 폐쇄된 후 소속 과학자들은 국가과학원 함흥분원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둘 다 화학 계열의 연구소라는 게 이유였다. 실제로 애초에 상원분원에서 마약을 만들던 기술자들은 화학 공업의 중심지인 함흥의 화학공대 출신이 많았다. 바로 이들이 고향인 함흥으로 내려갔을 무렵 북한엔 일명 ‘고난의 행군’이라 부르는 대기근이 닥쳤다. 그러니 배급만으로는 먹고살기 어려워졌고, 마약 제조 전문가들인 이들은 헤로인보다 싸고 쉽게 원료를 구할 수 있는 필로폰을 제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필로폰 원료는 중국에서 의료용으로 수입하는 염산에페드린이었다. 이들이 개발한 필로폰은 2003년경부터 헤로인 판매망을 타고 평양에 공급되기 시작했다. g당 5~10달러 정도에 공급되는 필로폰은 순식간에 평양의 중산층까지 확산됐다. 2006년경부터는 지방에까지 필로폰 밀매가 본격화됐고, 2010년경에는 지방의 중산층들도 필로폰에 손을 댔다.

여전히 북한 내부의 마약 제조는 개인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진행된다. 정찰총국, 보위성, 보위사령부 등 군부 조직도 마약 생산과 해외 밀매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소식통은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북한군 총정치국 산하 53부에서 평양과 평성 사이 배산점이란 지역에 필로폰 생산 공장을 만들어 운영했다”며 “해마다 국가 차원에서 20t 이상의 필로폰이 생산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한국의 ‘기술자’까지 북한 진출

북한산 ‘얼음’은 96~99% 정도의 순도를 보장하기 때문에 해외 밀매 조직엔 인기가 높다. 북한산 필로폰의 순도가 높아진 데엔 한국 ‘기술자’들의 공이 크다는 것이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한 탈북 소식통은 “필로폰 생산 초기에 한국인 기술자 3명이 국내 단속을 피해 동남아시아, 중국에 갔다가 북한까지 넘어왔다”며 “이들의 경험과 지식이 북한에 전수됐다”고 말했다. 한국인 기술자들도 99% 순도의 필로폰을 만들지는 못했다. 북한 당국이 정예 연구진을 투입하고 전문 생산기지를 제공하는 ‘투자’를 한 결과 순도가 크게 높아졌다는 것. 기술을 모두 넘겨받은 북한은 이후 한국 기술자 2명을 총살했으며 1명은 간신히 탈북해 숨어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기술자가 해외로 진출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중국의 소식통은 “중국 단둥에서 북한과 큰 규모로 거래하는 사업가 송모 씨가 2004년 북한 기술자를 10만 달러에 계약해 데려온 뒤 기술을 전수받고 살해한 사건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의 필로폰 기술이 다시 진화했다. 과거엔 중국의 염산에페드린이 원재료였는데 이를 수입하기 어려워지자 원재료를 바꾸면서 이른바 ‘기술혁신’을 이뤘다는 것. 탈북 소식통은 “새로운 방식의 필로폰 제조를 두고 내부에선 ‘마약 제조의 기본을 바꾼 혁명이 일어났다’고 비유한다”며 “새 재료를 쓴 필로폰의 질이 훨씬 더 좋다”고 말했다.

● 해외 북한 식당이 마약 유통망

북한의 마약 해외 밀매는 점점 거침없어지고 있다. 대북 소식통은 “신의주와 마주한 중국 둥강(東港)시 공안국 부국장과 변방정찰 대대장이 2015년경 북한과 필로폰 밀거래를 하다 체포됐는데, 압수수색에서 50㎏ 이상의 필로폰이 나왔다”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도 “동남아시아는 북한 얼음이 이미 점령했다. 심지어 필리핀에는 유통 거점이 없는데도 팔려 나간다”고 증언했다.

동남아시아의 북한 필로폰은 현지 밀매조직을 통해 다시 미국과 유럽 등으로 넘어간다. 실제로 2015년 8월 미국 뉴욕 맨해튼연방지법에서는 북한산 마약을 미국에 밀반입하려던 홍콩 범죄조직 소속의 영국, 체코, 필리핀, 대만 등 다국적 조직원 5명이 검거돼 재판을 받기도 했다. 이들은 북한산 마약을 필리핀에 들여와 숨겨 놓은 뒤 100㎏을 태국을 경유해 반입하려다 미 마약단속국(DEA)에 적발됐다. 이 중 한 명은 자기 조직이 필리핀에 북한산 필로폰 1t을 숨겨놓고 있다고 고백했다.

2017년 말 중국 동북 3성 지역에서 밀거래되던 고순도 북한산 필로폰 가격이 갑자기 하락했다. ‘한 작대기’에 60만 원 정도에 밀거래되던 필로폰은 25만 원 선까지 하락했다. 작대기는 1회용 주사기 한 대 분량을 의미하는데, 4g 정도다.

북한산 마약 거래에 정통한 소식통은 “대북 제재로 중국 내 북한 식당이 한꺼번에 철수하면서 이들이 가지고 있던 마약을 일시에 방출했기 때문에 가격이 크게 하락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중국 내 북한 식당들이 북한산 마약의 유통거점 역할을 한다는 간접 증거인 셈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