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판결 뒤 관계 경색 심화 재단 설립해 보상하는 방안은 무산… 대책도, 대화도, 협의도 없는 상황 갈등 끓다보면 결국 충돌 불가피, 조건 없는 정치적 해결 필요하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한일 모두 이유는 있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조약으로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해결된 사안이고 기존 한국 정부의 방침과도 어긋나니 한국이 조치를 취해 달라고 한다. 실제로 청구권 조약에 징용 문제가 열거돼 있고, 한국 정부는 1974년과 2007년 특별법을 만들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실시했다. 2007년에는 7만2631명에게 6184억 원을 들여 대대적인 보상을 했다. 그러니 일본은 이번에도 한국 정부가 대책을 강구하라는 것이다. 반면 한국 정부는 사법부의 최고 기관인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개인보상 청구권이 살아있다”고 판결했고 이에 따라 일본 기업들이 피해자들에게 1억 원씩 배상하라고 했으니 이를 존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대법원의 최종적인 판결은 무시할 수도 없고 되돌릴 방법도 없다. 그렇기에 이낙연 국무총리는 ‘정부 대책에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를 본 일본은 한국 정부가 움직일 의사가 없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한일기본조약에 규정한 대로 협의 요청을 넘어서 중재로 옮겨가자고 제안했다.
한국의 일부 일본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주도해 청구권 자금의 수혜를 입은 한국 기업들과 일본 가해 기업들이 출연하는 재단을 만들어 피해자 보상을 실시하자는 안을 제시했으나, 청와대가 “한국 정부가 나설 일이 아니다”는 입장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안을 유연하게 숙의했으면 갈등의 돌파구가 열릴 수도 있었는데 만시지탄이다. 1월 9일 일본 정부는 의견이 다르니 협의를 통해 사안을 풀어보자고 했다. 물론 판결을 보는 입장이 아주 다른 두 정부가 머리를 맞댄다고 풀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협의에 응해서 한국의 입장을 설명하고 일본의 적절한 대응을 요구하고,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협의를 끝내는 방식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응하지 않았다. 일본은 이를 두고 한국의 성의 없는 대응이라고 해석했다. 그래서 일본은 협의를 넘어서 중재에 가고 차후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도 방법의 하나이긴 하지만 한일관계가 사실상 동맥경화에 걸릴 공산이 크고, 승패와 무관하게 한일 당사자들이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도 있으며 이 문제에 최종적인 종지부를 찍지 못하고 상처만 남을 가능성도 있다. 더구나 판결 당시의 정권이 정치적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현재 마련할 수 있는 대책은 많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누가 보상을 하는 것과는 별도로 ‘피해자 한정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소송 제기와 피해 보상이 무제한, 무기한 게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선 소송을 제기하고 보상받을 수 있는 피해자는 강제징용 피해자 본인에 한정하는 게 좋다. 가족과 후손까지 소송을 벌이면 끝없는 소송에 휘말린다. 또 징용 피해자라는 객관적인 증빙을 하는 입증 책임을 완수해야 보상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시효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을 한정해야 한다. 피해자 한정 조치를 두고 한일이 머리를 맞대고 얘기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원칙론의 고수만으로는 풀어 나갈 대책이 묘연할 것이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