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섭과 패션 디렉터 톰 포드(오른쪽). 간호섭 교수 제공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패션은 영화와 굉장히 닮았습니다. 디렉터가 곧 영화감독이죠. 패션기업의 오너나 대표에게 의뢰받는 요구는 늘 두 가지입니다. 멋져야 하고 소비자의 호응이 있어 유행이 돼야 합니다. 영화가 재밌어야 하고 관객의 호응에 힘입어 흥행해야 하듯 말이죠. 영화를 찍듯 패션 디렉터는 패션쇼를 기획합니다. 영화에 시나리오가 있듯 패션쇼는 그 시즌의 테마를 토대로 옷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시나리오가 글로 완성된다면 옷은 색상의 선택과 직물의 조합 그리고 레이스나 스팽글 장식 같은 부자재를 통해 완성됩니다. 또 배우를 캐스팅하듯 모델을 캐스팅합니다. 영화에서 주연 배우가 중요하듯 패션쇼의 메인 모델을 정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소위 잘나가는 모델은 겹치기 출연으로 패션쇼를 펑크 내기도 합니다.
미국 뉴욕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던 시절 톰 포드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당시 쓰러져 가던 구찌를 다시 세계적인 브랜드로 일으킨 디렉터였습니다. 그 성공에 힘입어 구찌는 패션 그룹으로 성장해 여러 럭셔리 브랜드를 인수했습니다. 그 브랜드 중의 하나가 바로 알렉산더 맥퀸이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맥퀸’에서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한 명의 디자이너가 아니라 패션 디렉터가 돼 브랜드를 맡으니 직원들 때문에 일을 관둘 수가 없다. 그들이 내야 할 건강보험료, 주택 대출금 등 그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내가 쉴 수가 없다”고 말입니다. 패션계의 악동이었던 그였지만 디렉터로서 진지한 모습을 보여줬던 그 장면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미술계의 비엔날레처럼 패션위크에 총감독제를 도입했습니다. 패션위크에 참여하는 여러 디자이너와 관련 분야 종사자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패션 디렉터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는 듯합니다. “패션 디렉터가 뭐 하는 사람이냐”라고 묻는다면 “패션인들의 미래를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답하겠습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