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받는 ‘뇌공학’ 기술
미국 남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이 시력을 잃은 환자(안경 쓴 남성)의 양쪽 눈에 2015년 미국 세컨드 사이트 메디컬 프로덕트사의 인공망막 장비 ‘아르거스 2’를 이식했다. 한 사람이 양쪽 눈에 인공망막을 이식한 첫 사례다. 당시 60개 전극을 지닌 인공망막을 썼다. 남캘리포니아대 제공
임 연구원이 주목하고 있는 기술은 망막을 대신해 빛을 감지하고 이를 뇌에 전달하는 인공망막이다. 이미 프랑스와 미국, 독일에 기업 세 곳이 설립됐고, 그중 두 곳이 살아남아 일부 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환자 허리춤에 찬 기기와 망막 안에 이식한 얇은 센서로 빛을 감지해 뇌에 신호를 전달한다. 독일 기업이 내놓은 인공망막은 가로세로 3mm의 공간에 밀집한 1500개 전극으로 물체의 흑백 이미지를 흐릿하게 인식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성능이 더 개선돼야 한다는 게 임 연구원의 생각이다. 그는 20, 21일 서울 성북구 KIST에서 개최된 제4회 국제신경공학콘퍼런스(ICAN)에서 “현재 해상도가 가장 높은 독일의 인공망막 기기를 통해 확보된 시력도 법적으로는 여전히 시력 상실로 판정될 수준”이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발자인 공학자와 신경과학자가 더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연구원의 사례는 뇌공학이 발전하며 공학자와 뇌과학자가 직접 소통할 필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뇌는 특유의 복잡성 때문에 여전히 인류에게 가장 큰 ‘블랙박스’로 남은 대상이다. 이진형 미 스탠퍼드대 신경과학연구소 교수는 “뇌는 다양한 종류의 신경 세포가 존재하고 그 수가 1000억 개에 이르는 데다 복잡한 연결성을 지녀 신경세포 하나하나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뇌 연구의 사회적 중요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 교수는 “고령화와 가족관계 파탄에 따른 고립화, 그로 인한 정신질환의 증가로 연구 수요가 높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특히 뇌전증과 우울증, 치매, 파킨슨병 등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들 질환을 치료하려면 먼저 이런 ‘오작동’을 일으킨 원인을 찾아야 한다. 마치 휴대전화의 회로처럼, 뇌의 ‘연결망’이 문제 해결을 위해 꼭 이해해야 할 대상으로 꼽힌다. 뇌 측정 기술이 주목 받게 된 이유다. 하지만 뇌과학 현장의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기술은 연구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윤의식 미 미시간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뇌공학의 발견이 뇌과학의 발견을 가속화하는 시대에 공학자들이 아무도 쓰지 않을 기술을 개발해서는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며 “‘고객’인 뇌과학자와 긴밀히 협조하며 요구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뇌과학자와 공학자들은 이제 수시로 만나며 협력 연구를 늘리고 있다. 한국에서 처음 열린 ICAN도 그 사례 중 하나다. 2016년부터 미국과 독일, 한국에서 개최되고 있다. 뇌를 측정하거나 자극을 가하는 다양한 전기생리학 분야 공학자와 뇌과학자들이 참여한다. 한국에서는 KIST 뇌과학연구소가 주요 협력기관으로 참여하고 있다.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