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장관, 일개 장관 아니다… 취임 2년 돼도 ‘패싱’ 소리 비정상 공로명 “장관 때 수시 대통령 통화”… 日, 최고 판사 1명 외교관 충원 외교, 정권 따라 널뛰면 안 돼… ‘첫 여성 외교’ 영예로 만족하길
박제균 논설주간
그래도 이 제목 그대로 가기로 했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외교를 다루는 주무 장관은 일개 장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 외교장관(Foreign minister)에 국가수반에 버금가는 위상을 부여하고 그에 합당한 외교적 예우를 해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 정도 크기에, 세계 4강에 둘러싸인 나라에서 외교장관의 역할과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은 올 초 한 인터뷰에서 “이(문재인) 정부의 모든 거버넌스(governance·통치 방식)는 청와대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스마트한 사람인데 지금은 인형같이 존재감이 없다”고 했다. 청와대의 ‘외교부 패싱’ 문제를 지적한 외교 원로의 고언(苦言)이지만, 이 말에 누구보다 아파해야 할 사람은 강 장관 자신이다.
물론 장관이 대통령의 직속기관인 청와대의 뜻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더구나 ‘청와대 정부’로 불리는 이 정부에서 말이다. 그래도 과거에 어떤 장관들은, 특히 외교장관 가운데 몇몇은 청와대와 맞섰고, 필요하면 대통령에게도 직언을 했다.
최근에 간행된 공로명 전 장관의 구술 기록 ‘한국 외교와 외교관’에서 공 전 장관은 “장관으로 있는 동안에 대통령과 수시로 전화 연락을 하고, 대통령 주변에서도 제가 하는 전화는 항상 장벽 없이 대해줬다”고 술회했다. 강 장관은 문 대통령과 ‘장벽 없이’ 수시로 전화 통화하는가. 오죽하면 강 장관이 롱런하는 건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과 달리 청와대에서 만만하기 때문이란 관측까지 나올까.
강 장관이 임명됐을 때 많은 사람이 기대를 걸었다. 나도 그중 하나다. 특유의 선민의식에 빠져 외국과의 교섭보다 ‘부내(部內) 정치’에 치중했던 외교부. 그래서 한국의 외교 경쟁력을 떨어뜨린 외교부의 체질을 확 바꿔주길 바랐다. 그런데 2년이 지난 지금 어떤가. 장관부터 청와대에 휘둘리니까 외교관들이 선민의식은커녕 청와대 눈치나 보며 복지부동하고 정치권에 어디 줄 댈 데 없나 두리번거리는 지경이다.
그렇게 나온 한국 외교의 성적은 그 어느 때보다 참담하다. 지금처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 4강 중 어느 한 나라와도 가깝지 않은 적이 우리 역사에 또 있었을까. 무엇보다 한국 안보의 주축인 한미동맹이 흔들린다. 미일(美日), 중일(中日) 관계는 이보다 좋을 순 없는 요즘이라 더욱 대비된다.
강 장관은 틀이 좋다. 특유의 흰머리 카리스마에 여성 팬도 많다. 일각에선 내년 총선 카드로도 거론될 정도다. 정치에 뛰어드는 건 무방하지만 외교장관으로선 지족원운지(知足願云止·만족함을 알고 멈추기를 바람)했으면 한다. 계속 자리에 연연하다간 한국 최초 여성 외교장관의 영예가 여성 외교수장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바뀔까 두렵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