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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정연욱]北화물선과 푸에블로호

입력 | 2019-05-27 03:00:00


미국 재무부는 2005년 9월 불법자금 세탁 혐의로 마카오 BDA 은행을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했다. 순식간에 북한의 해외금융 거래가 막혔다. 미국 금융제재의 파장을 우려한 각국 업체들이 북한과의 거래를 끊어버렸기 때문이다. BDA 북한 소유 계좌 50여 개에 있던 2500만 달러도 동결됐다. 이 돈은 당시 김정일의 통치자금이었다. 이 때문에 북한은 그 어떤 제재보다도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 김계관 당시 북한 6자회담 대표는 “피가 마른다”고 토로했다. 2005년 당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주도한 신보수주의(네오콘) 그룹의 핵심 멤버가 현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인 존 볼턴 유엔 주재 대사였다.

▷미국이 최근 불법 환적 혐의로 북한 화물선 ‘와이즈 어니스트호’를 억류하자 북한은 유엔 주재 대사가 기자회견을 하는 등 총공세에 나섰다. 기존의 여느 제재에 대한 반발과 차원이 다르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도 24일 BDA 사건을 언급하며 미국을 비난했다. 석탄 등 북한의 수출 광물을 운반해온 이 선박은 BDA 계좌처럼 통치자금과 연관된 활동을 해왔으며, 김정은의 사치품 등 밀수의 온상이라는 의심을 받아왔다. 북한은 2007년 미국이 BDA 계좌 동결을 풀자 6자회담에 복귀했는데, 이번에도 선박을 돌려보내야 비핵화 협상에서 태도 변화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 요구에 대해 볼턴 보좌관은 그제 기자들과 만나 푸에블로호 반환 문제부터 논의하자고 말했다. 미 해군 소속 정보수집함인 푸에블로호는 1968년 1월 원산 앞바다에서 북한에 나포됐다.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게 했던 사건이다. 북한은 335일 만에 나포 당시 사망한 선원 1명의 시신과 생존 선원 82명을 돌려보냈지만 선체는 계속 억류하고 있다. 배는 원산항에 있다가 1995년 평양 보통강변에 있는 전승기념관에 옮겨와 세계 최강국 전함을 나포했다는 반미 선전의 상징이 됐다.

▷푸에블로호 문제는 2·28 하노이 회담을 앞두고도 부상했다. 김정은이 비핵화 협상의 히든카드로 푸에블로호 반환을 꺼낼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 것. 지난해 1차 싱가포르 회담 때 미군 유해 반환처럼 미국을 유인할 수 있는 상징성이 컸다. 하노이 회담 결렬로 푸에블로호 반환은 없던 일이 됐지만 북한이 화물선 한 척에 과도한 집착을 보이자 다시 주목을 받게 됐다. 상대방 수중에 들어가게 된 배경은 전혀 다르지만 두 나라가 각각 되돌려 받고 싶어 하는 두 선박이 평행선을 달리는 북-미 간에 의외의 접점 포인트가 될 가능성은 없을까.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