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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의 자연과 삶]〈3〉누구에게나 두 번째 삶이 있다

입력 | 2019-05-27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생명체에게 삶은 한 번뿐이다.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 있는 삶은 딱 한 번이다.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고구려 담징의 벽화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 일본의 법륭사(호류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다. 무려 1300년이나 되었다는데, 대대로 이곳의 목수로 살아온 니시오카 쓰네카즈에 따르면 법륭사에 있는 노송나무 기둥도 1300년이나 됐다. 수령(樹齡) 2000년쯤 되는 나무를 기둥으로 쓴다고 하니 싹이 튼 걸로 따지면 3300년이나 된 것이다.

평생 나무를 보고 만지며 살아온 그는 나무에게는 두 번의 삶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 삶은 나무 자체의 삶이고, 두 번째 삶은 목재로 쓰인 후의 삶이다. 그에 따르면 법륭사 기둥 나무는 ‘지금도 훌륭하게 자기 역할을 다하며’ 1300년째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 생전에 남긴 ‘나무의 마음, 나무의 생명’이라는 책에서는 “대패를 대보면 지금도 상품(上品)의 향기가 난다”며 “아직 살아있다”고 한다. 향기가 나는 건 나무로서의 가치를 잃지 않았다는 뜻이다.

물론 모든 나무가 이런 삶을 누리는 건 아니다. 현재 수령 2000년 이상 된 노송나무가 있는 곳은 대만의 원시림이 유일한데 이런 ‘천 년 거목’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야생이라는 완전경쟁 환경에서 자랐다. 왜 하필 이런 곳일까? 자라는 동안 온갖 풍상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는 단단함을 갖춘 덕분이다. 그래서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암반지역 같은 곳에 이런 나무가 많다. 역시 오래 산 나무를 연구한 식물학자 에드먼드 슐먼도 같은 얘기를 했다. 좋은 환경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나무들이 오래 살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좋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나무들이 오래 산다고 말이다.

하지만 새로운 1000년을 살려면 한 가지를 더 갖춰야 한다. 50년 정도 건조시키며 내부 수분을 완전히 빼야 한다. 그래야 변형되지 않는다. 이 시간을 아끼면 오래가지 못한다. 이전 삶에 필요했던 많은 것들을 완전히 버려야 하는 것이다.

얼마 전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이 두 번째 삶을 살겠다며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일본 아키히토 왕도 살아서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우리 주변에도 수십 년 다닌 직장을 은퇴하고 두 번째 삶을 시작한 이들이 많다. 소설 ‘백 년의 고독’을 쓴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인간은 어머니 배 속에서 태어나는 그날 한 번만 태어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숨만 쉬는 존재가 아니라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기에 새로운 의미를 설정하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다.

영화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에서 절반의 기계인간 마커스(샘 워싱턴)는 인류의 저항군 지도자 존 코너(크리스천 베일)가 부상으로 죽어가자 그에게 자신의 심장을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두 번째 기회를 가질 자격이 있죠. 이게 내 기회예요.” 우리도 마찬가지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