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정책 전문가 마이클 바 美 미시간대 공공정책대학원장
금융규제 전문가 마이클 바 미국 미시간대 공공정책 대학원장이 13일 서울의 한 호텔 로비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기득권을 공고하게 보호하는 규제를 없애야 한다”며 자신의 규제에 관한 철학을 밝혔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정말 중요한 질문이다. 우리는 산업 혁신을 지원하면서도 새로운 위험을 키우지 않도록 관리하는 균형을 가져야 한다. 이때 두 가지 위험이 있다. 하나는 규제가 시대에 뒤떨어지는 기술, 그리고 그 기술을 보유한 몸집만 크고 고루한 대형 기업을 보호하는 것이다. 규제당국은 금융 분야의 경쟁을 방해하는 이런 규제를 잘 관찰하고 개선해야 한다. 또 다른 위험은 혁신 산업이 우리가 지금은 모르는 새로운 위험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혁신이 새로운 위험을 어떻게 만들어 내나.
바 원장이 거론한 모기지론의 대표적 사례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다. 2000년대 초반 미국 은행들은 저신용자들에게 “집값이 오르면 집을 팔아서 빚을 갚아라”며 대출을 권유했다. 이후 주택 경기가 위축되자 서민들은 상환 불능에 빠졌고, 금융사들이 부실화되며 금융위기가 터졌다. 바 원장은 모기지론 같은 신상품이 예상치 못한 위험을 일으킬 수 있으니 미리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규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부는 규제 완화를 강조하지만 공무원들이 실천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규제 담당자들은 규제가 풀릴 때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항상 신중할 수밖에 없다. 다만 당국자들은 ‘건전한 목적으로 소비자를 보호하는 규제’와 ‘혁신과 경쟁을 억압하는 규제’를 구별해야 한다. 새로운 핀테크 기업이 금융시스템에 진입해 글로벌 경쟁에 활발히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 규제 당국이 중시해야 할 것은 경쟁과 혁신을 방해하는 규제가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본금에 대한 일부 규제는 강해질 필요가 있다. 하지만 시장 진입을 제한하는 규제는 개선해야 한다. (규제의 보호를 받는) 기득권이 공고해지도록 만드는 규제가 어디에 존재하는지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새로운 경쟁이 일어나도록 이 규제를 개선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규제가 많은지(more regulation) 적은지(less regulation)’를 논할 게 아니다. ‘더 나은 규제(better regulation)’를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한국은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을 논의한 지 8년이 넘었다. 이 법이 신사업을 방해한다는 금융회사들의 주장 때문이다.
“그건 실수다. 소비자 보호를 강화해야 시장이 잘 작동한다. 명확한 법이 있어야 금융회사들이 혁신 상품을 내놓을 때 소비자들을 속이지 않고, 소비자들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이러한 법을 통해) 은행이든 비(非)은행이든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높은 수준의 기준과 장’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도 금융소비자보호국(CFPB)을 둠으로써 경쟁을 방해하지 않고 긍정적인 환경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시행해 좋았던 사례는….
“신용카드 문제다. 우리는 신용카드사에 소비자들이 카드사가 정한 최소 결제금만 카드사에 낼 경우 얼마나 이자가 늘어날 수 있는지를 결제 명세서를 통해 설명하도록 했다. 이런 변화로 소비자들은 이자 비용을 줄일 수 있었다. 또 한 달에 한 번씩 돌아오는 카드 결제대금 만기일이 일정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이 자꾸 만기일을 까먹어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곤 했다. 우리는 이 만기일을 일정한 시기로 정해 소비자 혼란을 줄였다.”
미국 신용카드는 대개 20∼25달러나 사용액의 1∼3% 수준의 최소 결제금이 있다. 사용자가 자금 여력이 없으면 최소 결제금만 내고 다음 달로 잔여금 결제를 미룰 수 있다. 다음 달로 미뤄진 결제금에는 두 자릿수의 이자율이 적용된다.
―그런 규제를 둘 때 신용카드사로부터 반발은 없었나.
―미국의 기업과 정부는 과잉 규제를 어떻게 완화하나.
“미국도 완벽한 시스템과는 거리가 멀다. 시스템이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당국은 평범한 소비자들의 관점을 잃기 쉽다. 그래서 이런 논의에 대중의 참여를 끌어들이는 노력이 중요하다.”
―포용적 금융의 중요한 요소는 뭔가.
“저소득층, 평범한 근로소득자가 원하는 바를 충족하는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 소비자가 금융상품을 이용하는 법, 소비자들이 돈을 지불하는 방법이 쉽고 간편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계좌를 만들 때 최소 예치금 기준이 너무 높아선 안 된다. 포용적 금융을 하면 많은 사람들을 금융시스템 안으로 끌어들이고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다.”
―포용적 금융에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사기업은 포용 금융에 소극적이다.
“미국에서도 민간 금융회사가 포용 금융을 실천하도록 만드는 게 오랫동안 어려웠다. 일단 사람들이 금융시스템에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에는 ‘현금인출편리성(good funds availability)’이란 지표가 있다. 소비자들이 은행 계좌에 있는 예금을 급할 때 얼마나 빠르고 쉽게 꺼내 쓸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저소득층은 급전이 필요할 때 돈을 빨리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 저소득층이 돈을 쉽고 빠르게 꺼내 쓸 수 있는 지급결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민간 금융회사가 포용 금융에 참여하도록 어떻게 넛지(자연스럽게 유도)할까.
“금융적 인센티브가 필요하다. 금융회사가 저소득층에 유익한 상품을 충분히 공급했다면, 다른 규제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는 식이다. 또 금융사들이 비영리기관이나 종교단체와 파트너십을 맺어 포용 금융 서비스를 내놓도록 할 수 있다.”
―포용 금융에서 이익이 안 나면 참여를 꺼릴 텐데….
“우리도 그런 고민과 논쟁이 있었다. 포용 금융은 이익이 가장 많이 나는 사업이 아닐 수 있지만 얼마든지 수익을 낼 방법도 있다. 예컨대 저소득층에 마이너스통장 기능이 없는 계좌, 직불카드만 사용할 수 있는 계좌를 제공할 수 있다. 이런 건 부실 위험이 덜하다.”
―한국에선 가계부채가 문제다. 금리가 인상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어떻게 해결할까.
“금융사와 개인 소비자 중 누가 리스크를 더 잘 감내할 수 있을까. 금융사다. 그러면 금융사는 저소득층에 위험을 덜 전가하는 금융상품을 내놔야 한다. 고정금리 상품처럼 아주 간단한 구조의 상품 말이다. 또 정부가 저소득층의 소득과 임금을 늘리고, 금융소비자 보호를 철저히 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또 올 가능성이 있나.
“미국에선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과 결과가 잊혀지고 있어 우려스럽다. 지금 워싱턴에선 관료들이 금융 규제인 ‘도드-프랭크법’을 바꾸면서 자본금 요건을 낮추고, 유동성 규제를 완화하려 한다. 금융위기를 일으킨 여러 요건이 다시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새로운 혁신을 위한 게 아니다. 소비자, 투자자 보호를 약화시키는 일이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