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유정열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실장
유정열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실장
이후 독일은 자국의 역사적 경험과 문화적 특성에서 비롯된 잠재 성장력을 활용하는 경제정책을 펼쳤다. 금융 등 서비스업 보다는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기술과 경험이 축적된 전통 제조업에 집중했다. 독일 남부 수공업 겸업 자영농에서 발전한 가족경영 중소기업인 미텔슈탄트를 혁신주체로 키웠다. 중세 길드의 마이스터와 도제식 교육을 현대 직업훈련에 접목해서 우수한 인력을 배출했다.
독일의 전략은 적중했다. 명품식기 ‘헨켈’, 프리미엄 가전 ‘빈터할터’, 자동차부품 명가 ‘보쉬’ 등 제조업 전반에 걸쳐 히든 챔피언들을 키워냈다. 높은 실업률과 낮은 성장률로 한때 유럽의 병자로 불렸던 독일은 제조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견실한 성장을 기록하며 세계경제의 우등생이 되었다. 선진국들도 제조업 부활을 추진하면서 독일 배우기에 나섰다.
그동안 산업통상자원부도 제조업 분야에서 이러한 노력을 계속해왔다. 지난달 발표한 시스템반도체 전략이 그러하다. 자동차, 휴대전화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수요산업을 아직 초기단계인 시스템반도체 육성의 마중물로 활용하고,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에 오른 경험을 파운드리 분야에 접목하여 단기간에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웠다. 연초에 발표한 수소경제 로드맵에도 우리의 강점을 살리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세계 최초의 수소차 상용화 경험, 수소생산을 뒷받침하는 석유화학 산업 등 축적된 역량을 활용하고, 충전인프라 등 아직 부족한 부분은 보충하는 대책을 제시했다.
혁신은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축적의 길이다. 혼자서는 갈 수 없고 함께 같이 가야 한다. 혁신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걸어온 길의 연장선상에서, 각자의 삶의 현장과 주변에 숨어있는 잠재 성장력을 찾아내어 첫 걸음을 떼는 것이 제조혁신의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