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로맥(왼쪽)-KT 로하스. 스포츠동아DB
한 경기에서 5타수 4안타를 기록한 타자의 타율은 0.800이다. 그러나 이 타자가 시즌 끝까지 8할 타율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단 한 경기의 표본으로는 알 수 있는 것이 극히 제한돼있다.
미국 통계전문사이트 ‘팬그래프닷컴’은 타자 기록이 안정되는 최소 표본(sample size)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타자의 삼진율은 60타석, 볼넷률은 120타석, 홈런율은 170타석에서 가치를 가진다. 출루율(460타석), 타율(910타수) 등 비율 기록은 조금 더 많은 표본을 필요로 한다. 가령 전년 대비 볼넷률이 대폭 증가한 타자가 이를 120타석 이상 유지한다면 ‘의미 있는 변화’를 추측할 만하다는 의미다.
올해의 키워드는 타고투저 완화다. 공인구 교체만을 직접적 원인으로 들 수는 없지만, 홈런과 안타 관련 기록은 눈에 띄게 줄었다. 27일까지 리그 전체 홈런율은 1.95%다. 지난해 3.09%보다 30%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2017년(2.72%), 2016년(2.57%), 2015년(2.66%) 모두 올해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삼진율에는 큰 변화가 없다. 삼진은 홈런의 세금으로 불린다. 홈런을 노리기 위해서 스윙을 크게 할수록 삼진 확률도 높아진다. 하지만 올해 삼진율은 18.0%로 지난해(18.6%)보다는 소폭 줄었을 뿐, 2017년(17.6%)보다 높다. 양의지(NC 다이노스·9.7%), 이정후(키움 히어로즈·7.8%) 등 평소 삼진이 적던 타자들은 소폭 감소에 성공했지만, 강민호(삼성 라이온즈·24.9%), 멜 로하스 주니어(KT 위즈·22.8%) 등은 홈런 생산만 덜할 뿐 삼진율은 비슷하다.
지난 수년간 KBO리그는 타고투저의 시대였다. 홈런이나 안타, 타율 등 타격 관련 각종 기록은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졌다. 그렇다고 국제대회에서 타자들이 그 위상을 떨쳤던 것도 아니다. 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물론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도 타자들은 자존심을 구겼다. 우물 안, 무늬만 타고투저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공인구가 바뀌었다고 줄어든 홈런, 하지만 그대로인 삼진율은 이러한 허울 좋은 타고투저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