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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보유액은 수익상품에 투자 않나요

입력 | 2019-05-28 03:00:00

[가족과 함께 읽는 경제교실]




Q. 이달 초 동아일보에 실린 ‘가족과 함께 읽는 경제교실’에서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이 4000억 달러가 넘는다는 내용을 봤어요. 엄청난 돈인데 한국은행은 이 돈을 그냥 금고에 넣어두고 있는 건가요? 수익성이 높은 상품에 투자하면 우리나라가 더 부자가 되지 않을까요?

A. 만약 가족 중 누군가 큰 병에 걸리거나 사고로 다쳐서 급히 병원비가 필요하다고 합시다. 높은 수익만 보고 모든 재산을 부동산에 투자한 경우 당장 현금을 마련하기 쉽지 않습니다. 부동산은 금액이 워낙 크다 보니 오늘 당장 부동산을 팔려고 내놓아도 바로 거래가 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얼마만큼의 비상금은 꼭 바로 쓸 수 있도록 현금으로 갖고 있거나 예금 통장에 넣어두곤 합니다.

외환보유액은 1997년 외환위기 때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은 긴급한 위기 상황 등에 대비해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는 일종의 비상금입니다. 수익성이 높지만 당장 필요할 때 현금화할 수 없는 자산에 외환보유액을 투자하면 본래의 목적과는 달리 실제 위기 상황에서 외환보유액을 쓰지 못하는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외환보유액은 필요할 때 쉽게 팔 수 있으면서도 가치 하락 위험이 작은 자산으로 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고 하죠. 높은 수익을 내려면 그만큼 많은 위험을 감수하고 안전하지 않은 자산에 투자해야 합니다. 주식이나 신용도가 낮은 채권에 투자하면 예금보다 훨씬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도 있겠지만, 주가가 폭락하거나 채권을 발행한 회사가 부도나면 투자 원금을 제대로 회수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외환보유액을 수익성만 좇아 위험한 자산에 투자한다면 원금 손실이 나서 외환보유액이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기 때문에 무작정 수익성만 생각하고 투자할 수는 없습니다. 노후 자산으로 써야 하는 돈을 수익성을 높이려고 원금 손실 위험이 높은 자산에만 투자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변 사람들은 뜯어말릴 겁니다. 마찬가지로 외환보유액을 유동성과 안전성을 고려하지 않고 수익성만 따져 운용한다면 우리나라에 투자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우리나라의 위기 대응 능력에 근본적인 의심을 가지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외환보유액을 금고에 쌓아만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위기 때 사용할 우리나라의 자산을 계속 불려 나가는 것도 매우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에 한국은행도 외환보유액을 운용하면서 수익성을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여러 자산에 분산해 투자함으로써 전체적인 위험은 낮추면서도 수익률을 제고하는 투자 다변화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입니다. 외환보유액으로 즉시 현금화가 가능한 예금은 물론이고 만기가 긴 국채를 비롯해 원금 손실 가능성은 다소 있더라도 신용도가 높은 선진국 회사채나 우량 주식에도 투자합니다.

한국은행은 이처럼 유동성과 안전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면서도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크게 ‘현금성 자산’과 ‘투자 자산’으로 구분해 관리하고 있습니다. 현금성 자산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동성과 안전성을 중시하는 자산입니다. 일반 가계에서 생활비 용도로 쓰려고 수시 입출식 통장에 넣어둔 예금과 비슷합니다. 현금성 자산은 수시로 필요할 때 바로 현금화할 수 있는 달러화 예금이나 만기가 짧은 국채에 주로 투자됩니다.

‘투자 자산’은 유동성과 안전성을 중시하는 동시에 수익성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자산입니다. 현금화하기 어렵지 않고 원금 손실 위험이 낮으면서 수익성도 양호한 자산을 뜻합니다. 가계에서 만기가 비교적 길지만 금리가 높은 정기예금이나 펀드 등에 투자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됩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단 1%의 수익이라도 더 얻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정도로 어려운 투자 환경입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미중 무역분쟁이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 등 우리나라를 둘러싼 세계경제 여건도 녹록지 않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외환보유액의 수익성을 높이는 데만 치우치지 말고 자산 가치를 지키고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에도 힘써야 합니다.

강지연 한국은행 외자운용원 위탁1팀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