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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한의 전쟁史]〈59〉게티즈버그의 1%

입력 | 2019-05-28 03:00:00


남북전쟁 전반기에 남군은 연승을 거두었다. 전적만 보면 우세해 보였지만 전쟁 자체는 북군이 공세, 남군이 수세였다. 공세로 전환하지 않는 이상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았던 남군 사령관 로버트 리는 대담한 작전을 구상한다. 남군의 주력을 이끌고 서북쪽 펜실베이니아주의 볼티모어 쪽으로 크게 우회해 북부의 수도 워싱턴을 북쪽에서 공략하는 것이었다.

놀란 북군도 가용한 모든 병력을 차출했다. 양군이 부딪친 곳이 게티즈버그였다. 게티즈버그 전투는 총 3일간 벌어졌다. 마지막 날 벌어진 조지 피킷의 공세는 남북전쟁 전체를 통틀어 가장 장중한 드라마였다. 리는 남군 3개 사단을 동원해 북군의 중심부 세메터리 리지를 향해 들판을 가로지르는 정면 공격을 감행한다. 이 공세는 참가자 50%가 사상하는 참극으로 끝났다. 리의 시도가 대담한 승부수였는지, 무모한 작전이었는지는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다.

한 번은 게티즈버그 현장을 찾은 일이 있었다. 남군의 출발 지점에서 평원을 내려다봤을 때 정말 말도 안 되는 시도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재적인 장군이 왜 이런 무모한 시도를 했을까? 아무리 뛰어난 리더도 이 한 번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조급함과 압박에 어리석은 결정을 했던 것일까?

하지만 북군의 최후 방어선이 있던 지점에 서 보자 생각이 바뀌었다. 정말로 남군은 성공할 수도 있었다. 승리의 99% 지점까지 도달했던 것이다. 박빙의 전투에서 1%는 인간이 측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똑같은 현장에서 위치만 바꿔놓고 봐도 이렇게 생각이 달라진다.

우리 사회의 갈등과 혼란이 심해져 가는 이유는 타인의 입장에서 보는 것 자체를 신념에 위반하는 행위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티즈버그처럼 현장은 양측의 위치에서 봐야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어리석음을 진리로 고수하는 어리석음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 사회는 미래가 없다.
 
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