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교조적 진보 아닌 유연한 진보 집권 3년차 文정부, 새 길을 가야
정연욱 논설위원
대선 때 “반미면 어떠냐”는 도발적 유세로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던 그였지만 집권 후 첫 순방국으로 미국을 선택했다. 은밀히 보수 성향의 교계 원로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 원로를 통해 미국 정부의 의구심을 해소하면서 방미(訪美)의 밑자락을 깔았다. 노무현 집권 시절 지지층의 반발이 더 거세지는 내전(內戰) 상황도 벌어졌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갈등의 불씨에 기름을 부었다. 대표적 진보 성향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가 한미 FTA 타결을 막기 위해 7년 만에 거리 농성에 나설 정도였다. 보수 세력을 겨냥해 직격탄을 날린 노무현이었지만 진보 진영에도 날을 세웠다.
“진보 진영은 개방을 할 때마다 ‘개방으로 나라가 무너질 것’이라고 걱정했지만 우리 경제는 모든 개방을 성공으로 기록하며 발전을 계속했다. … 진보의 가치를 실현하는 데 필요하면 그것이 신자유주의자들의 입에서 나온 것이든 누구의 입에서 나온 것이든 채택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2007년 2월 청와대 브리핑 ‘대한민국 진보,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대선 재수에 나선 문재인 캠프는 그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진보의 새 버전을 선보였다. 공세적으로 펼친 ‘경제정당, 안보정당’의 우향우 행보가 대표적이었다. 진보 진영이 꺼리는 ‘성장’ 담론을 적극 채택했고, 북한 잠수정 타격 때문에 천안함 폭침이 일어났음을 분명히 했다. 교조적 진보의 틀을 깨는 시도였다.
문재인 집권 3년 차를 맞았다. 하지만 유연한 진보는 선거용 메시지에 그친 느낌이다. 성장 담론은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네이밍에만 인용된 듯하다. 성장이란 구호는 등장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한쪽에서 기업들의 혁신 성장을 외치면서도, 또 다른 한편에서는 “재벌을 혼내줘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니 메시지 혼선으로 ‘결정장애’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안보를 책임진다는 약속은 남북관계에 종속된 하위 개념으로 전락했으니 더 말할 게 없다. 나아가 문재인 정부는 정책 기조 수정은 없다고 쐐기를 박고 있다.
웬만한 진보 인사들은 노무현식 유연한 진보 정치의 경험을 떠올리기 싫어한다. 보수 진영이 친노와 친문을 편 가르려고 하는 노림수라는 이유를 댄다. 하지만 엄연한 사실이 없던 일이 될 순 없다.
노무현은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거친 언사도 쏟아냈지만 대통령 직의 엄중함을 외면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일개 정파의 리더가 아니며,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대변해야 하는 자리다. ‘새로운 노무현’은 이 같은 사실을 분명히 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문재인’이 나올 수 있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