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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조유라]서울에 올라와 공부하는 죄

입력 | 2019-05-28 03:00:00


13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19 중견기업 일자리드림 페스티벌’ 행사장을 둘러보고 있는 구직자들. 동아일보DB

조유라 정책사회부 기자

“뭐 하러 서울 왔는지 모르겠어요. 엄마한테 미안해요.”

서울 시내 주요 대학 중 하나인 A대 졸업생 이모 씨(27·여)는 졸업 후 2년째 공기업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경남 진주에서 ‘수재’라는 소리를 들으며 자란 이 씨는 부모님과 이웃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서울권 대학으로 진학했다. 하지만 그는 요즘 한숨을 쉬는 일이 늘었다. “진주에 있었으면 돈도 아끼고 지역에 있는 공공기관 취업도 좀 더 쉽게 되지 않았을까요?” 이 씨가 이렇게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유는 최근 지방대 출신을 공공기관에 일정 비율 이상 채용하는 법률이 발의됐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도종환 의원 외 11인이 지난달 22일 발의한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지방대육성법) 개정안’에는 지방에 있는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선발을 40%까지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현행 지방대육성법에 공공기관의 지방인재 채용을 ‘권고사항’으로 두고 있는 것을 의무적으로 강제하는 내용으로 강화한 것이다. 지방대육성법이 규정한 ‘지역인재’는 지방대 학생 또는 졸업자만을 가리킨다.

수도권 지역 대학과 학생들은 해당 법률이 역차별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지역인재에 40%나 할당하는 것은 공정한 경쟁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인천 B대 관계자는 “막말로 수도권 대학의 지방 출신 학생들은 공부 조금 더 잘해서 온 건데 수도권 대학을 나왔다는 이유로 혜택을 못 받는 게 말이 되냐”고 토로했다.

이들은 “수도권 대학이 위치한 지자체 소속 공공기관만이라도 수도권 대학이 채용 인센티브를 가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한다. 경기 북부 등 수도권 외곽 지역은 지역만 수도권일 뿐 취업 여건은 지방대와 다름이 없다. 지방 대도시와 일부 혁신도시에는 공공기관과 대기업이 들어와 있지만 수도권 외곽은 지자체 또는 지자체 산하 일부 공공기관을 제외하면 소위 말하는 ‘괜찮은 일자리’가 거의 전무하다.

“우리 입장에선 ‘그림의 떡’이고 ‘양날의 검’이죠.” 혜택을 받게 되는 지방대들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40%라는 수치가 실현 가능하냐는 거다. 토익 점수나 자격증 등 공공기관은 지원 자격이 까다로운 경우가 많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지역인재 공공기관 채용 30% 달성’을 내걸었다. 이번 개정안은 그 연장선에서 나왔다. 지방대 채용 보장 법안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지역 표심을 의식한 결과가 아니냐는 얘기가 많다. 지방대 출신이 취업 시장에서 받는 차별을 줄이고, 지방대를 활성화해 지역 경제를 살려 보자는 법안의 좋은 취지는 나무랄 데 없다. 법안을 발의한 도종환의원실 측은 ‘시행령을 통해 지방 출신 수도권 대학 학생들에 대한 역차별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그러나 아무리 선한 의도에서 시작한 일이라도 뜻하지 않은 피해자를 만들어 낸다면 그 방법이 옳은 것이었는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조유라 정책사회부 기자 jyr01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