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도미니크 에어케(레돔) 씨(왼쪽)와 신이현 작가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레돔인데 무슨 일인가 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비어 있던 벌통에 벌들이 떼를 지어 이사를 오고 있는 중이었다. 하늘 가득 날면서 붕붕 소리를 냈고 벌통 입구에는 수백 마리가 떼를 지어 와글거리며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굉장히 흥분된 것처럼 윙윙대는 소리가 태풍 같았다. ‘야, 이리 와. 인간이 보고 있잖아. 빨리빨리 안으로 들어가. 이러다 오늘 밤 밖에서 자야겠어.’ 이런 소리를 주고받는 것처럼 보였다.
“벌들이 왜 여기로 이사를 하는 거지? 살던 데서 전쟁이라도 난 건가? 어떻게 이 빈 벌통을 발견했을까? 한 동네가 몽땅 오는 걸까? 벌들의 이삿짐은 뭐지?”
“5월은 벌들이 분가를 하는 때야. 살고 있는 벌통에 벌이 너무 많으면 늙은 여왕벌이 새 여왕벌이 태어나기 전에 반 정도의 무리를 이끌고 나와. 무리가 여왕벌을 감싸고 보호하는 동안 일부는 새로운 거처를 물색하지. 그중에 가장 좋은 곳을 선택해서 이사를 하는 거야.”
야호, 우리 집 벌통이 벌들이 살고 싶은 집으로 선정됐다. 원래 레돔은 세 개의 벌통을 가지고 있었다. 한 차례 황금 꿀을 수확했지만 차례로 낭패를 당했다. 한 통은 한여름 말벌의 습격으로 떼죽음을 당했다. 다른 한 통은 농약 든 꿀을 물고 와서 데굴데굴 하더니 모두 죽었다. 구사일생으로 건진 마지막 통은 지난겨울 한파에 동사했다. 봄이 되어 뒷산에 아카시아 꽃이 피기 시작하자 그는 몹시 우울해했다. 꽃이 꿀을 품은 채 시들고 있으니 새로운 벌을 구해 달라고 졸랐다. 나는 거절했다. 벌들 살 돈으로 꿀을 사면 1년 먹고도 남으며, 벌들이 오면 신경 쓸 것이 많아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어쩌면 분가한 벌들이 날아올지도 몰라.”
그는 벌통을 깨끗이 닦고 청소하여 나무 그늘 아래 놓아두었다. 떠난 연인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가엾은 남자처럼 빈 통 앞을 서성였다. 벌들이 알아서 들어오길 기다리다니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런데 늙은 여왕벌이 대군을 이끌고 온 것이다.
그는 금빛 날개를 비비며 꽃 속에 들어가 꿀을 빠는 벌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지겨운 줄도 모르고 벌의 라이프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제 곧 말벌이 어린 벌들을 공격하는 여름이 올 것이고 그는 철통 보초를 설 것이다. 어딘가에서 농약이라도 치면 노심초사 벌들의 반경에 대해 걱정할 것이다. 새 아이를 맞이한 것처럼 염려와 축복이 넘친다.
“마당에서 벌들이 윙윙대는 소리를 들을 때가 가장 평화로워.”
그가 뭐라고 하든 나는 그저 벌 떼가 제 발로 날아온 것이 흐뭇하다. 언제쯤 저 꿀을 먹을 수 있으려나 침만 삼키고 있다. 참 무정한 인간이다.
신이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