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887’의 배우이자 연출 로베르 르파주 내한
1인극 ‘887’에서 로베르 르파주가 어렸을 적 머물며 다양한 기억을 간직한 887번지 아파트 앞에 선 장면. 그는 “실제로는 길 건너편에 살던 사람인데 극의 구성을 위해 아파트에 사는 인물로 표현하는 등 상상력을 발휘했다”고 설명했다. LG아트센터 제공
공연 때마다 ‘르파주 열풍’을 불러일으킨 로베르 르파주(62)가 배우이자 연출로 참여한 연극 ‘887’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그는 태양의 서커스 ‘카(KA)’,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에서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이미지, 영상, 무대장치를 폭넓게 활용하며 ‘현대 연극의 혁신가’로 평가받는다. ‘기계 장치’라는 뜻의 창작집단 ‘엑스 마키나’를 설립해 활동하고 있다.
27일 서울 중구 주한 캐나다대사관에서 만난 그는 과학기술을 연구해 혁신적으로 무대에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 묻자 뜻밖의 답을 내놨다.
이번 작품에서도 르파주는 머릿속 기억을 끄집어내듯 디테일한 장치로 무대를 꾸몄다. 그는 “시시각각 변하고 움직이는 무대 위의 아파트, 뇌의 이미지, 옛날 사진, 그림자 효과 등을 사용했다”며 “특히 미니어처를 활용한 고급 기술을 사용하면서도 단순한 인형극처럼 보이도록 만든 점이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로베르 르파주는 “연극은 무엇보다 공감대를 형성하는 언어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LG아트센터 제공
자전적 이야기는 사회적 기억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으로 나아간다. 르파주는 “현재 기억에 비해 또렷한 어린시절의 이야기(history)에서 시작해 대문자 ‘H’로 시작하는 캐나다의 역사(History)까지 짚고 싶었다”며 “계급적 갈등과 마찰이 끊이지 않았던 캐나다 퀘벡의 아픈 모습을 극에 담았다”고 덧붙였다. 작품은 한국과 무관한 이역만리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는 “잘못을 잊고 기억을 잊은 듯 살아가는 이 시대의 한국, 세계 관객에게 기억에 대한 이야기는 중요한 시사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르파주는 연극이 당면한 위기에 대해서도 말했다. 넷플릭스 등 새로운 매체에 맞서 연극이 살아 있는 예술이 돼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29일부터 6월 2일까지.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 4만∼8만 원. 8세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