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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스태프에 52시간 근무 보장

입력 | 2019-05-28 03:00:00

영화 ‘기생충’ 스태프들과 표준근로계약 맺고 영화 제작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으면서 표준근로계약을 맺고 진행한 영화 제작 과정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가장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꼽히는 영화계에서 주 52시간제를 지키며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봉 감독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스태프들과 ‘표준근로계약서’를 맺은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설국열차’(2013년)와 ‘옥자’(2017년)를 거치며 미국식 조합 규정에 따라 (영화를) 찍는 걸 체득했다”며 “8년간 트레이닝을 해 이번에 표준근로계약에 맞춰 (영화 촬영을) 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표준근로계약서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근로시간과 초과근무수당, 계약기간 등을 상세히 기록해 맺는 계약이다. 한때 영화 제작 현장에선 표준근로계약서 없이 도급 계약 형태로 스태프를 고용해 장시간 일을 하는 게 관행처럼 여겨져 왔다. 스태프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최저임금과 법정 근로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무방했다.

하지만 2015년 영화계 투자사와 제작사, 문화체육관광부, 영화진흥위원회가 ‘노사정 이행협약’에 따라 표준근로계약서를 도입하면서 영화계 노동 환경이 크게 개선됐다. 2014년 영화 ‘국제시장’은 기획 단계부터 표준근로계약서를 맺고 하루 12시간 촬영시간을 지켜 큰 관심을 받았다.

영화진흥위원회 조사 결과 지난해 스태프 중 근로계약 체결 시 ‘표준근로계약서로 계약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74.8%였다. 이 응답 비율은 2014년 35.3%에서 2016년 53.4%로 매년 크게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표준근로계약서를 맺지 않았다는 스태프 중 절반 이상이 ‘사업주(제작사)가 거부했다’고 답해 표준근로계약이 완전히 뿌리 내리진 못한 상태다.

제작사 입장에선 표준근로계약서 도입이 제작비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대해 봉 감독은 “좋은 의미의 상승”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스태프의 노동을 이끌고 예술적인 위치에서 갑이기 때문에 나의 예술적 판단으로 근로시간과 일의 강도가 세지는 것이 항상 부담이었다”며 “이제야 정상화되어 간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기생충’은 총 77회로 촬영을 모두 마쳤다. 근로시간을 지키며 순탄한 영화 제작이 가능했던 건 봉 감독의 정교한 작업능력 덕이기도 하다. 주연배우 송강호 씨는 “봉준호의 세계에선 모든 것이 계산돼 있고 정교하게 구축돼 있다”며 “무엇보다 밥 때를 정교하게 잘 지켜줘 좋다. 그래서 우리들이 굉장히 행복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은서 기자 clu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