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스태프들과 표준근로계약 맺고 영화 제작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으면서 표준근로계약을 맺고 진행한 영화 제작 과정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가장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꼽히는 영화계에서 주 52시간제를 지키며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봉 감독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스태프들과 ‘표준근로계약서’를 맺은 사실을 공개했다. 그는 “‘설국열차’(2013년)와 ‘옥자’(2017년)를 거치며 미국식 조합 규정에 따라 (영화를) 찍는 걸 체득했다”며 “8년간 트레이닝을 해 이번에 표준근로계약에 맞춰 (영화 촬영을) 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표준근로계약서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근로시간과 초과근무수당, 계약기간 등을 상세히 기록해 맺는 계약이다. 한때 영화 제작 현장에선 표준근로계약서 없이 도급 계약 형태로 스태프를 고용해 장시간 일을 하는 게 관행처럼 여겨져 왔다. 스태프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해 최저임금과 법정 근로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무방했다.
영화진흥위원회 조사 결과 지난해 스태프 중 근로계약 체결 시 ‘표준근로계약서로 계약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은 74.8%였다. 이 응답 비율은 2014년 35.3%에서 2016년 53.4%로 매년 크게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표준근로계약서를 맺지 않았다는 스태프 중 절반 이상이 ‘사업주(제작사)가 거부했다’고 답해 표준근로계약이 완전히 뿌리 내리진 못한 상태다.
제작사 입장에선 표준근로계약서 도입이 제작비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대해 봉 감독은 “좋은 의미의 상승”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스태프의 노동을 이끌고 예술적인 위치에서 갑이기 때문에 나의 예술적 판단으로 근로시간과 일의 강도가 세지는 것이 항상 부담이었다”며 “이제야 정상화되어 간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기생충’은 총 77회로 촬영을 모두 마쳤다. 근로시간을 지키며 순탄한 영화 제작이 가능했던 건 봉 감독의 정교한 작업능력 덕이기도 하다. 주연배우 송강호 씨는 “봉준호의 세계에선 모든 것이 계산돼 있고 정교하게 구축돼 있다”며 “무엇보다 밥 때를 정교하게 잘 지켜줘 좋다. 그래서 우리들이 굉장히 행복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은서 기자 clu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