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MB때 강제노동 해당 여부 이메일 문의…ILO 입장 유지 정부 “본인 선택권 주면돼”…“복무제도 바꿔도 협약 위반일수도”
국제노동기구(ILO) 선언에 따른 국가별 기본 연례보고서, 대한민국편 (2000~2017년) 갈무리 (출처 : ILO) © 뉴스1
우리나라의 군 대체복무 제도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상 금지된 ‘강제노동’에 해당한다는 ILO의 판단은 10년 이상 변함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명박 정부 당시 고용부가 ILO에 관련 내용을 질의했고 이메일 회신을 통해 이같은 답변을 받은 것으로 취재결과 드러났다.
현 정부는 ILO 협약이 비준돼도 사회복무제의 ‘폐지’는 없을 것이라고 강변했으나 ILO의 권위 있는 답변을 듣지 못한 상태에서 자의적인 주장에 불과한 셈이다.
정부는 최소 2007년부터 “군 대체복무는 강제노동”이라는 ILO의 입장을 인지해 왔고, 이를 근거로 협약 비준 불가 방침을 밝혀 왔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이후 최근 들어서는 “선택권을 부여하면 강제노동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입장을 바꿨다.
이러한 내용은 정부가 2007~2008년 ILO에 전달한 강제노동 철폐 관련 연례보고에 기재됐다. ILO 협약 중 강제노동 조항을 비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정부는 ILO에 자문을 구했다는 내용이다.
대체복무가 강제노동이라는 ILO의 입장은 이후로도 꾸준히 유지됐다. 정부는 2009년 ILO 이사회에 참석해 ILO 국장과의 면담에서 ‘공익근무(현재의 사회복무)는 군 복무의 일환’인 점을 강조했다. 또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와 마찬가지로 협약의 예외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ILO는 “공익근무는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으므로 병역 의무로 볼 수 없다”라는 답변을 반복했다. 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군사훈련 대신 근로할 것을 스스로 요청했으나 공익근무요원은 근로를 자원하지는 않았으므로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며 우리 정부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러한 대치는 2012년 이사회 계기 면담에서도 이어졌다. 당시 고용부는 “공익근무가 일반 현역병보다 선호되며, 따라서 자발성이 있기에 협약 예외로 지정돼야 한다”고 제안했으나, 이 때에도 ILO는 “협약 적용에서 제외되지 않는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더 나아가 “ILO가 대체복무를 강제노동에 해당한다고 해석하는 한 ILO와 합의에 이르기 ‘매우 어렵다’(very difficult)”며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징병제는 필수 불가결하기에 협약 비준은 힘들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며 이 기조는 별다른 근거 확보나 상황변화 없이 변경됐다. 고용부는 지난 22일 ILO 핵심협약 조항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비준되지 않은 4개 조항 중 3개를 연내 비준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는 문제의 강제노동 조항(29항)이 포함됐다.
당시 고용부는 대체복무 논란과 관련해 “협약상 강제노동은 ‘처벌 위협 아래 강제되거나 비자발적으로 제공되는 노동’으로 규정되므로 대체복무에 가는 분들이 대체복무를 선택할 수 있으면 된다”면서 “신체검사 4급 판정을 받으면 당연히 보충역으로 편성되는 제도를 변경하면 협약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빠른 시일 내에 협약을 위반하지 않을 수 있는 보충역 제도 개선방안을 만들겠다고 부연했다.
문제는 ILO가 우리나라 대체복무제의 강제노동 여부를 엄격하게 해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ILO는 강제노동 기준을 상당히 꼼꼼히 살피는 편인 데다가, ‘한국의 현 대체복무제도는 강제노동’이라는 판단을 2007년부터 최근까지 10년 넘게 고수한 셈이기 때문이다. 또한 ILO는 앞서 대체복무제의 개편이 아닌 ‘폐지’를 권고하기도 했다.
김근주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ILO가 강제노동을 판별하는 기준은 일률적이지 않다. 전문가위가 일정 기간마다 개별 회원국 사례를 들여다보면서 판단한다”며 “따라서 이전까지 있었던 ILO의 판단도 사실상 비공식적인 것이지만 현 정부의 판단도 맞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보충역에 선택권을 준다면 상황은 완화될 수 있으나 정말로 그러할지는 면밀히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