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정상 통화 내용을 누설해 논란에 휩싸인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 더불어민주당은 강 의원을 검찰에 고발하고 한국당에 의원직 제명을 요구하고 있다. 페이스북 캡처
최우열 정치부 기자
한미 정상 간 통화 내용을 폭로한 자유한국당 강효상 의원의 정보원을 청와대와 외교부가 색출해 징계 절차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한국당 안팎에선 이전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강 의원 폭로 이후 단 13일 만에 정부 내 소스가 쉽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 당직자는 “강 의원이 외교 기밀인 한미 정상 통화 관련 정보를 너무 거칠게 다뤄 (나중에라도 정보를 받을 수 있는) 귀한 ‘휴민트’를 잃었다. 정보 취득에서 폭로까지 프로페셔널한 구석을 찾을 수 없다”고 혹평했다. 구체적으로는 강 의원이 고교 후배 외교관과 직접 접촉해 통화 기록을 남긴 것, 내용을 자르거나 붙이는 등 가공 없이 풀 텍스트를 줄줄이 공개했다는 점, 외교 기밀인 만큼 후속 논란에 대한 고려도 별로 없는 점 등을 문제 삼았다. 또 다른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겠다는 노력은 좋은데 프로페셔널한 측면이 별로 없다. 이런 식으로 계속하면 지지층도 우리를 아마추어 야당으로 볼 것”이라고도 했다.
한국당이 야당이던 2000년 전후에는 지금보다 폭로가 더 많았다.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 정보통 의원들은 매일같이 ‘비(秘)’자가 찍힌 누런 봉투를 들고 이회창 총재실을 드나들기도 했다.
야당의 사정은 그렇다 치고, 공직자 정보원을 빨리 색출해낸 지금 정부와 청와대는 이전보다 과연 더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사건 직후 기자와 만난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외교 대화를 공개한 강 의원을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동시에 청와대·여당의 잘못된 관료관(官僚觀)도 지적했다. 외교부 차관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지낸 천 이사장의 말은 이랬다.
“요즘 외교부 선후배 간에 전화 한 통도 제대로 못 한다. 오랜만에 귀국한 친한 후배를 우연히 만나면 주뼛거리며 ‘찾아뵙지도 못해 미안하다’고 한다. 나는 후배에게 ‘괜히 통화기록 남겼다가 적폐로 찍히지나 말아라.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고 위로한다.”
그는 외교부 공무원들만 해도 15차례 이상 휴대전화 조사를 당했다는 얘기에 대해선 “이 정도면 공무원이 복지부동하는 것 외에 무슨 일 자체를 못 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와 김수현 대통령정책실장이 말한) ‘관료들이 이상한 짓’ 하는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라고도 했다.
야당의 폭로도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고 정치를 투명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강 의원의 폭로 내용과 절차는 그러했는지 돌이켜봐야 한다. 동시에 청와대와 외교부는 이번 유출 사건을 외교관 개인의 일탈로만 볼 게 아니라, 이 정부 들어 관료 조직이 왜 이리 됐는지 그 배경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출범 직후부터 지금까지 대통령이 나서 공직사회를 겨냥해 중단 없는 적폐청산을 외치고 있는데, 그러지 않아도 복지부동이 체질화됐다는 비판을 받는 공직사회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정상적으로 돌아간다면 그게 오히려 비정상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