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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기성정당 “우린 젊은 표심을 잃었다”

입력 | 2019-05-29 03:00:00

정치 지형 바꾼 ‘20대의 반란’… 英-佛 녹색당 18~24세 득표율 1위
獨 기민련 30세미만 득표 13% 그쳐… 청년실업-불확실한 미래에 분노




“젊은층을 잃었다.”

아네그레트 크람프카렌바워 독일 기독민주연합(CDU) 대표는 27일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받아 든 뒤 이렇게 한탄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전했다. 전날 독일 ZDF방송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CDU의 30세 미만 득표율은 13%에 불과했다. 청년층은 중도좌파 성향의 사회민주당(SPD)도 외면했다. 그 대신 이들은 3명 중 1명이 녹색당을 선택했다.

23∼26일 실시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수십 년 동안 유럽 정치를 주도해 온 기성 정당들이 퇴조하고 녹색당, 극우 포퓰리스트 정당 등이 크게 약진했다. 이를 이끈 것은 30세 이하의 청년층이었다.

여론조사기관 해리스인터랙티브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도 녹색당은 18∼24세 유권자에서 득표율 22.1%로 1위를 차지했다. 기성 정당인 공화당, 사회당의 지지율은 각각 4.4%와 7.8%에 불과했다. 영국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18∼24세 유권자들이 뽑은 1위 정당은 녹색당이었다. 핀란드 네덜란드 아일랜드 포르투갈에서도 젊은층은 녹색 열풍을 일으켰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선거 결과는) 젊은층의 기후 변화에 대한 관심과 기성 정치에 대한 분노가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8월부터는 10대 학생이 주도한 기후 변화 시위 ‘미래를 위한 금요일’과 관련해 ‘공부 파업’이 진행되고 있다. 선거 막바지 독일의 한 젊은 유튜버의 CDU 비판 동영상이 조회 수 1200만 회를 기록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은 다양한 이색 경력 소유자들을 유럽의회로 불러들였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NBA 스타 출신으로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옛 소련 농구팀의 금메달 주역이었던 리투아니아의 샤루나스 마르출리오니스(54)가 당선됐다. 그는 리투아니아의 농민녹색연합을 대표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독일의 유명 TV 요리사인 사라 비너(56)는 오스트리아에서 유럽의원으로 당선됐다. 제초제 사용 금지와 청소년들의 건강한 식품 문화 캠페인을 주도하는 그는 녹색당 요청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본인을 ‘세상에서 가장 슬픈 코미디언’이라고 주장하는 니코 셈스로트의 당선이 독일에서는 화제다. 검은 후드티에 모자까지 쓰는 그는 선거 출마 때 직업란에 ‘의욕 꺾기 코치’라고 적었다. 그가 속한 당의 이름은 ‘당’으로 기후 변화를 부정하면 면허증 압수, 죽기 전 18년 동안 투표 금지 같은 황당한 공약을 내걸었다. 2004년 창당해 기성 정당을 비판하는 패러디를 주로 하는데 이번 선거에서 2.4%를 얻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