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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석 칼럼]취약함은 나의 길

입력 | 2019-05-29 03:00:00

‘소심한 소년’이 세심한 ‘봉테일’로… 취약함의 가치, 보는 방식에 달렸다
자기 한계의 인정, 항복 아니다… 취약성은 창의성과 변화의 원천
완벽함에 대한 자기최면 버려야




고미석 논설위원

지금 서울에서 가장 ‘핫(hot)’한 전시를 꼽는다면 영국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82)의 개인전이 빠질 수 없다. 개막 두 달을 넘긴 지난주 서울시립미술관은 여전히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입장 전부터 인증샷 찍느라 분주한 청춘 남녀부터 호크니 그림으로 제작한 포토존에 길게 늘어선 중장년들까지, 흔치 않은 세대 공감 전시장 풍경이었다. 세계 정상급 미술관에서 앞다퉈 전시를 열고, 한동안 생존 작가 작품 사상 최고 경매가를 기록했던 거장 호크니여서일까. 예술성과 대중의 사랑을 겹치기로 잡기에 이르렀다.

젊은 시절 호크니는 동성애 성향으로 고통을 겪었다. 1967년까지 영국에서 동성애는 처벌의 대상이었다.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반영해 기존 문법과 차별화된 남성 누드로 존재감을 키웠다. 이후 팔순을 넘긴 오늘날까지 회화 판화 사진 무대디자인 영상 등 장르 매체에 구애받지 않고 실험을 거듭하며 고유한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동시대 작가 중 그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장르가 됐다는 찬사를 받는 이유다.

눈을 국내로 돌리면 한국 영화 100주년에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선물한 봉준호 감독 역시 작품성에도 흥행에도 밀리지 않으면서 “봉준호 자체가 장르”라는 평을 듣고 있다. 그는 시상식장에서 “열두 살 나이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은 대단히 소심한 영화광”이라고 밝혔다. 밖에서 놀기보다 집에 틀어박혀 TV 영화에 빠져든 그는 자신을 “너무 소심해 사회생활도 못 할 것 같던 아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인생의 걸림돌 아닌 디딤돌로 돌아왔다. 내향적 기질을 훗날 세심한 성격으로 갈고닦은 노력 덕분이리라.

예컨대, 작품 디테일에 강한 ‘봉테일(봉준호+디테일)’이란 별명의 봉 감독이 단짝배우와 맺은 인연도, 열악한 영화계에서 스태프와 표준근로계약서를 맺은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지 싶다. 그가 조연출을 맡은 영화 오디션에서 무명배우 송강호가 떨어졌을 때 ‘언젠가는 함께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진심 가득한 메시지를 남겼단다. 송강호는 이때를 기억하면서 스타가 된 뒤 신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에 기꺼이 주연을 맡았다. 현장 스태프의 고된 처지를 챙기는 꼼꼼함도 그런 식이었던 것 같다.

문화부 기자를 꽤 오래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예술가들은 스스로의 취약함에서 자신의 강점을 길어 올린다는 사실이었다. 비단 예술 종사자 아니라도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기에 상처받기 쉬운, 저만의 취약성을 안고 살아간다. 이를 원망거리로 삼는 경우도 있고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주어진 형편을 낙관적 방향으로 바라보는가 여부에 따라 그 인생이 처한 취약한 처지도 가치가 달라진다. 어느 건축가의 책에서 본 구절이 떠오른다. 세상에 흠 없는 땅은 없다. 하지만 대지가 품은 결점을 극복하면서 예기치 못한 흥미로운 공간이 만들어진다. 결국 흠이 없다면 특징도 없다는 뜻인데, 그게 가장 큰 흠이라는 결론이었다.

‘취약성의 힘’이란 주제의 TED 강연으로 명성을 얻은 작가 브레네 브라운은 “취약성이야말로 창의성, 혁신,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원천”이라며 “취약성은 약점이 아니다. 오히려 세상에 대담하게 맞서는 한없는 용기”라고 들려준다. 자신의 취약성을 포용하지 못하고 감추려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약자라는 의미다.

자기 약점과 한계에 깃든 강점을 깨닫는 것은 곧 자아 발견의 여정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제약이 있으면 반대급부로 따라오는 이로운 점도 있기 마련이다. 스스로의 불완전한 점을 직시하고 보듬는 사람이라면 타인의 불완전함과 불안을 이해할 가능성도 높다. 결국 숨은 잠재력이 움트는 것도 거기서부터일 터다.

취약함이 때로 자산이 된다는 사실. 이는 개인의 삶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보다 큰 단위 집단도 불확실한 상황에 대처하는 자기 한계를 포용하는 능력과 용기가 있으면, 한층 강한 사회와 나라로 진화할 수 있을 터다. 다시 말해, 똑같은 원인의 동일한 잘못을 되풀이한다면 전혀 자기 파악이 안 됐다는 증거다. 무오류성 완벽한 모습에 대한 환상 혹은 자기최면을 버리지 않는 한, 앞으로 한 발도 나아가기 힘들어진다.

짊어질 짐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가장 무거운 짐이란 얘기가 있다. 어깨에 매달린 짐의 종류는 제각기 다를 테지만 곰곰 생각하면 그 짐은 다름 아닌 자기다움의 또 다른 이름이고, 나아갈 길의 나침반이 된다. 그리고 저마다의 한정된 생에서, 더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 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