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횡설수설/전성철]숙취 운전

입력 | 2019-05-29 03:00:00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 박한이(40)가 27일 은퇴를 선언했다. 박한이는 전날 키움과의 경기에서 2-3으로 뒤진 9회말 2사 1, 2루에 대타로 나서 역전 끝내기 2루타를 쳤다. 이튿날 오전 박한이는 전날 마신 술이 덜 깬 상태로 승용차를 운전해 자녀를 등교시키고 귀가하다 접촉사고를 냈다. 음주 측정 결과 혈중 알코올 농도는 면허 정지에 해당하는 0.065%였다. 2013년 한국시리즈 당시 감기몸살을 앓으면서도 도핑에 대비해 약도 안 먹었을 정도로 자기관리가 철저했던 그가 한순간 방심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한 것이다.

▷술 마신 다음 날, 잠을 푹 잤으니 괜찮을 거라는 생각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낭패를 보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배우 안재욱은 2월 아침 음주단속에 적발돼 면허정지 처분을 받았다. 술 마신 지 6시간 이상이 지났지만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96%였다. 가수 호란도 2016년 9월 새벽 숙취 상태에서 라디오 생방송을 진행하러 차를 몰고 가다가 접촉사고를 냈다. 그 일로 호란은 최근까지 2년 반가량 모든 활동을 접어야 했다.

▷몸무게가 70kg인 성인 남성이 소주 한 병을 마신 뒤, 알코올을 완전히 분해시키려면 10시간 이상을 쉬어야 한다. 6시간가량 자고 일어나도 혈중 알코올 농도는 0.05% 수준이어서 다음 달부터 적용되는 강화된 음주운전 단속기준(0.03%)을 훌쩍 뛰어넘는다. 체질이나 체격, 안주에 따라 알코올 분해에 걸리는 시간이 훨씬 길어질 수도 있다. 술을 마셨다면 무조건 조심하고 운전을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숙취 운전자는 상황 판단과 반응 속도가 떨어져 사고를 낼 가능성이 높다. 시속 80km로 주행할 때 숙취(혈중 알코올 농도 0.05%) 운전자의 급제동 거리는 53.3m로 정상 운전자의 47.5m와 큰 차이가 난다. 숙취 운전자는 맑은 정신인 운전자보다 평균 시속 16km 빠르게 달리고 차선 이탈은 4배, 교통신호 위반은 2배 더 많이 한다는 해외 연구 결과도 있다.

▷숙취 운전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아직 미약하다. 박한이 선수 음주운전 기사에 달린 댓글 중에는 “당일도 아니고 다음 날 아침에 걸린 건 억울하겠다”, “재수가 없었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술이 안 깬 상태에서 운전을 한다는 점에서, 숙취 운전은 음주운전과 똑같다. 술을 마시면 대리운전 기사를 부르는 것이 당연하듯이, 음주 다음 날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상식이 돼야 한다. “이 정도 쉬었으면 문제없겠지” 하는 생각으로 운전석에 앉는 것은 본인은 물론이고 남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다.

전성철 논설위원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