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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두렵지 않아… 조국해방 선구자 될 것”

입력 | 2019-05-29 03:00:00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때 당당… 당시 러 신문기사 24건 공개
安의사 “이토 사살, 마지막 아니다”… “기독교 묘지 매장” 유해 찾을 단서도




28일 국가기록원 직원들이 안중근 의사의 1909년 10월 하얼빈 의거부터 1910년 4월 사형 집행 후까지의 내용을 다룬 당시 러시아 극동지방 지역신문 기사들을 공개하고 있다. 뉴스1

“죽음은 두렵지 않다. 당신들의 고문도 두렵지 않다. 죽으면서도 나는 기쁘다. 나는 조국 해방을 위한 첫 번째 선구자가 될 것이다.”(‘프리 아무리예’ 1909년 10월 20일자)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哈爾濱)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1879∼1910)의 의거부터 신문, 순국까지를 자세히 다루며 안 의사를 긍정적으로 묘사한 러시아 지역신문 기사들이 공개됐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 28일 설립 50주년을 맞아 처음으로 공개한 기사 24건은 하얼빈 거사부터 이듬해 순국 직후인 4월까지 러시아 극동지역 신문들에 실린 것들이다.

거사 첫 보도는 ‘달니 보스토크’의 1909년 10월 28일자 기사로 보인다. 이 기사는 ‘이토 공작이 세 발의 총상을 입어 사망했고 조선인으로 밝혀진 범인이 체포됐다’고 전했다. 같은 해 11월 2일 ‘프리 아무리예’는 거사를 위해 하얼빈으로 떠나는 안 의사를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묘사했다. 당시 하얼빈 주재 일본 총영사의 신문에 당당하게 임한 안 의사의 진술도 담았다. ‘보스토치나야 자랴’ 기사에서 안 의사는 “이토 사살은 우리 조국 역사의 마지막 장이 아니다. 아직 살아 있는 것이 기쁘며 내 유골에 자유가 비출 것”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프리 아무리예는 1910년 2월 27일자에서 사형이 선고된 재판을 다루면서 안 의사가 “모든 조선 사람들이 이토를 혐오하고 조선 민족의 원수인 그를 나쁜 짓을 하는 무대에서 하루빨리 몰아내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한 최후 진술을 소개했다. 안 의사의 시신 매장지에 대한 단서를 담은 기사도 눈길을 끈다. 일간지 ‘우수리스카야 아크라이나’의 1910년 4월 21일자 기사에 따르면 안 의사의 시신은 그해 3월 26일 사형이 집행된 직후 관에 넣어져 중국 뤼순(旅順) 감옥 내 작은 예배당으로 옮겨졌다가 그 지역 기독교 묘지에 매장됐다. 안 의사 시신은 뤼순 감옥의 공동묘지에 묻힌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다만 뤼순 감옥 근처에 기독교 묘지가 있었는지, 또 이 기사가 얼마나 믿을 만한지는 확인이 필요하다. 안 의사는 ‘하얼빈공원 옆에 묻어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면 고국으로 옮겨 달라’고 유언을 남겼지만 시신을 찾지 못해 지켜지지 않고 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