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사측“서울 와야 R&D인력 확보”… 노조측“구조조정 위한 꼼수”

입력 | 2019-05-29 03:00:00

[현대중 노조 주총장 점거시위]중간지주회사 서울이전 충돌 배경은
使측 “미래 먹거리 확보 시급… 대학-기술 인재 있는 수도권 가야”
勞 “핵심 인력만 빼갈것” 의심… 울산시도 이전 반대 가세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이 강경 투쟁으로 내건 명분 중 하나는 법인 분할을 통해 연구개발(R&D)을 총괄할 중간지주회사(한국조선해양)의 서울 배치를 막겠다는 것이다. 울산 경제를 47년째 지탱한 현대중공업의 일부 기능을 떼어내는 게 직원들과 지역 민심에 배치된다는 주장이다. 반면 사측은 고급 R&D 인력을 확보하려면 중간지주회사를 수도권으로 옮겨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다른 대형 조선업체들이 이미 수도권에서 R&D센터를 열어 인재 확충에 나섰다는 것이 핵심 근거다.

28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체 11개사의 R&D 인력은 2014년 1만4169명에서 지난해 말 약 8500명으로 4년 사이에 40.1%가 감소했다. 조선업황이 나빠진 2014년부터 각 기업들이 구조조정으로 생산직뿐만 아니라 R&D 인력까지 감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선박 건조 수요가 지난해부터 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대형 3사는 올해 1분기(1∼3월)에 공개 채용을 진행하는 등 수 년 만에 인력 확충에 나섰다. 특히 대형 3사는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R&D 인력 확충에 목말라하고 있다. 이를 위해 대학과 기술 기업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수도권에 자리 잡는 것이 유리하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견해다.

실제 경남 거제시에 본사를 둔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12월 경기 시흥시에 R&D센터를 설립했다. 삼성중공업 역시 2014년 12월 일찌감치 경기 성남시 판교에 R&D센터를 열고 본사를 이곳으로 이전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시흥 R&D센터에 최신 수조 시설 등을 설치하면서 대학에서의 채용 관련 문의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극심한 노사 갈등을 겪고 있는 현대중공업은 이런 시도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당초 현대중공업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중간지주회사를 서울에 두면서 2021년 하반기(7∼12월) 중에 판교에 완공 예정인 글로벌 R&D센터(GRC)를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노조의 반발로 울산에서 중간지주회사로 보낼 예정이던 직원 50여 명의 인사 계획조차 취소한 상태다. 법인 분할이 이뤄지더라도 중간지주회사의 R&D 총괄 기능이 제대로 가동될지 불투명하다. 노조에서 GRC 설립 후 인력 이동과 채용을 반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선박 R&D 과정에도 정보통신기술(ICT) 등을 적극적으로 융합해야 살아남는 시대가 됐는데 연구소를 생산 시설 근처에만 둬야 한다면 인재 확보나 다양한 기업 간 협업에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노조는 중간지주회사 본사 이전과 관련한 사측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있다. 법인 분할을 통해 중간지주회사를 설립한 뒤 핵심 인력 다수를 울산에서 빼 수도권으로 보낼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울산에는 생산 기능만 남기면서 ‘빈껍데기’ 취급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업황에 따라 회사가 언제든지 손쉽게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는 만큼 고용불안을 우려하는 것이다.

노조의 주장에 지방자치단체까지 가세하면서 기업 성장을 위한 경영 판단은 정치적 논란으로까지 흐르고 있다. 송철호 울산시장은 20일 청와대를 찾아 중간지주회사의 본사를 서울로 두는 것에 반대한다는 내용을 전달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조선 사업을 하는 현대중공업의 본체는 울산에 그대로 남는데 노조는 그룹 전체가 옮겨가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