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박병대·고영한, 모두 혐의 부인 양승태, 직업 묻는 질문에 "없습니다" 고영한 "법정에 서니 가슴이 미어져"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최종 책임자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71·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이 29일 열린 첫 재판에서 “법관생활 42년을 하면서 이런 검찰 공소장은 처음 본다”며 작심하고 검찰을 비판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는 이날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1차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들은 뒤 시작한 모두진술에서 “검사들이 정력적으로 공소사실을 말했지만 그 모든 것들은 근거가 없고 어떤 건 소설의 픽션 같은 이야기”라며 “(공소사실) 모든 걸 부인하고 그에 앞서서 공소 자체가 부적합하다는 걸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무려 80명이 넘는 검사가 동원됐고 3개월 넘게 수사를 해서 300페이지가 넘는 공소장 하나를 ‘창작’했다”며 “저는 법관생활을 42년 했지만 이런 공소장은 처음 봤다”고 지적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저를 찾아오는 동료 법률가들도 공소장을 보고는 ‘어떻게 이런 공소장이 다 있느냐’는 말을 한결같이 한다”며 “이건 법률가가 쓴 법률 문서라기보다는 소설가가 미숙한 법률 자문을 받아 쓴 한편의 소설이라 생각될 정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공소장의 법적 측면에서 많은 허점과 결점이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공소장 첫머리에는 흡사 피고인들이 엄청난 반역죄나 한 듯이 아주 거대 담화로 거창하게 시작한다”며 “(피고인들이) 재판으로 온갖 거래행위를 했고, 있을 수 없는 재판거래를 한 걸로 엮어 모든 걸 왜곡해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해 줄거리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용두사미도 이런 건 없다”며 “용은 커녕 뱀도 제대로 그리지 못한 격이고, 블랙리스트도 있다고 온 장안을 시끄럽게 하더니 그런 리스트가 없다고 밝혀지자 통상적인 인사를 한 걸 블랙리스트라고 포장하고 있다”고 거듭 비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수사기록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피의자 신문조서엔 교묘한 질문을 통해 전혀 답변과는 다른 내용으로 기재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며 “또 제가 검찰 수사기록을 보며 깜짝 놀랐던 것은 공소장에 기재된 범죄행위가 그것에 대한 수사가 아니라 제가 취임한 첫날부터 퇴임까지 모든 직무행위를 뒤져 그 중 법에 어긋나는 걸 찾아내기 위한 수사였다는 게 느껴졌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검찰의 수사를 ‘사찰’이라고 표현하며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수사”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검찰 측은 이에 반박할 기회를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지만 ‘모두진술’ 단계에선 부적절하다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박 전 대법관은 “구체적 개별 공소사실, 사실관계, 법리 문제를 다투는 취지로 공판준비기일에 변호인 의견서를 낸 걸로 안다”며 “그것과 같은 내용”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고 전 대법관은 “법관 비위로 인한 상황에서 국민의 신뢰 회복을 위한 대응조치들을 부당한 보고를 하게 했다고 하고, 모든 조직에 있을 수 있는 광범위한 인사 재량에 속하는 부분에 일부 오해의 여지가 있는 부분을 인사 불이익으로 인한 탄압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며 “제가 행정처장 재직할 때 벌어진 일이란 사실만으로 제가 직접 지시하고 공모했다고 단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양 전 대법원장이 이날 법정에 나오자 두 전직 대법관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예우했다. 구속 상태지만 수의를 입지 않고 양복 차림으로 나온 양 전 대법원장은 무표정하게 자리에 앉았다. 양 전 대법원장이 법정에 나온 것은 지난 2월 보석 심문 이후 92일 만이다.
이날 재판은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가장 큰 규모인 417호 대법정에서 진행됐다. 수십명의 시민 방청단과 취재진 등이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봤다.
양 전 대법원장은 강제징용 소송 등 재판 개입 혐의, 법관 부당 사찰 및 인사 불이익 혐의, 헌법재판소 내부 정보 및 동향 불법 수집 혐의, 공보관실 운영비 불법 편성·집행 혐의 등 47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기소된 직후 보석을 청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