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공판기일에 출석해 모두발언서 소회 밝혀 檢·變, 모두진술 놓고 ‘신경전’도… 향후 공방 예고
고영한 전 대법관이 29일 오전 서울 서초총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사법농단’ 관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1회 공판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2019.5.29/뉴스1 © News1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된 고영한 전 대법관이 첫 공판기일 모두진술에서 긴 소회를 밝혀 눈길을 끌었다. 고 전 대법관은 5분이 넘는 모두발언을 통해 직접 국민에게 사과의 뜻을 밝혔다. 그에 앞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대법관이 혐의를 부인한다는 내용의 두, 세 마디 짧은 모두진술과 비교돼 큰 주목을 받았다.
고 전 대법관은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 심리로 열린 첫 공판기일에 출석해 모두진술에서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에 심려 끼쳐 송구스럽다”고 입을 열었다.
고 전 대법관은 “제가 그토록 사랑하고 지내던 법원의 형사법정에 서보니 가슴이 메어진다”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행정처 처장을 했던 제가 여기 선 것만으로 국민에 심려를 끼치고 사법부에 부담을 주게 돼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고 전 대법관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기도 했다. 그는 “공소사실을 보면 제가 노심초사하면서 행정처장으로 직무수행했던 부분이 모두 직권남용을 했다고 적혀있다며 ”일부 오해의 여지가 있는 부분을 인사불이익으로 탄압한 것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관의 재판 작용과 달리 사법행정자들은 조직의 위상을 강화하고, 목표들을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합목적성 수단에 대한 폭 넓은 재량을 가지고 있다“며 ”사후에 보기에 다소 부당하거나 적절하지 못한 측면이 있을지라도 이를 곧바로 형사범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에도 공정한 재판을 부탁했다. 고 전 대법관은 ”재판장님을 비롯해 두 분의 판사님이 언론보도를 통해 접하며 갖게 됐을 선입견을 걷어낸 상태에서 제 간절한 소리에 귀 기울여주시고, 제가 직권을 남용해 후배판사들에게 일을 시킨 것인지 신중하고 냉철하게 판단해달라“고 부탁했다.
고 전 대법관의 발언이 끝나자 법정 분위기가 사뭇 숙연해졌다.
검찰 측에서 세 명의 피고인에 대한 모두진술을 하던 중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이 ”이의 있다“며 발언을 중단시켰다. 변호인은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모두진술에서 적용 법조를 낭독하게 돼있고, 입증계획을 말하는 건 모두진술이 모두 끝나고 한 뒤에 하게 돼있다“며 ”(모두진술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입증계획을 말하는 건 취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검찰 측은 ”변호인이 어떤 점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는지 이유를 모르겠으나, 재판장의 지휘대로 하겠다“고 말했다.
검찰의 모두진술이 끝나고 피고인과 변호인의 모두진술 차례가 오자,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이 다시 이의르 제기했다. 그는 ”모두진술은 변호인이 먼저 하고 피고인이 하는 게 보통“이라며 변호인들이 먼저 모두진술을 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검찰 측에서 바로 ”형사소송법상으로 검사의 모두진술을 마치고 피고인이 하게 돼있다. 규정대로 하게 해달라“고 반박했다.
변호인은 ”순서에 관해 규정은 없으니 먼저 변호인이 모두진술하고 그 다음 피고인이 진술하겠다“고 하자 검찰 측은 ”공소사실 요지를 진술했는데 당연히 (공소사실) 인정 여부를 듣는 게 순서“라고 맞섰다.
양 측의 공방은 재판장이 피고인들의 공소사실 인정 여부 진술을 들은 뒤 변호인 모두진술, 피고인들의 보충진술을 하는 것으로 정리하면서 마무리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측 모두발언이 진행되는 동안 검찰 측을 응시하면서 경청하다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댔다.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은 꼿꼿한 자세를 유지한 채 굳은 표정으로 특별한 표정 변화 없이 검찰의 모두발언을 경청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