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스퍼 존스 ‘채색된 청동(에일 캔)’, 1960년.
약 60년 전 미국 작가 재스퍼 존스가 만든 이 조각은 마치 소확행 트렌드를 예견한 듯하다. 서른 살의 주목받는 신진 작가 존스는 평소 즐겨 마시던 맥주 캔을 청동 조각으로 만들었다. 모델은 황동색 캔 위에 심플한 디자인의 타원형 라벨이 붙은 ‘밸런타인 에일’이란 브랜드였다. 외관상으로는 진짜 캔과 조각 캔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기에 존스는 라벨 위에 그림처럼 붓질 자국이 보이도록 채색했다. 캔과 받침대 밑면에는 엄지손가락 지문도 찍었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캔과는 다른 ‘핸드메이드’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뉴욕 미술계는 잭슨 폴록이나 빌럼 더코닝이 주도하는 엘리트적인 추상표현주의가 주류였기에 이런 대중적이고 친근한 소재의 작품은 기성 화단에 대한 비판이나 조롱으로 읽혔다. 맥주 캔뿐 아니라 미국 국기나 지도, 과녁, 숫자 등 일상에서 흔하게 접하는 이미지나 기호들을 작품 소재로 삼은 그는 ‘팝아트의 아버지’라는 별명도 얻었다. 현재 생존 작가 중 가장 중요한 미국 화가로 인정받을 뿐 아니라 작품 값이 가장 비싼 작가다. 그의 초기작 한 점은 무려 1억1000만 달러에 팔렸다.
사실 맥주 캔은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가장 소소하고 하찮은 물건에 속한다. 내용물이 비면 즉시 버려진다. 그러나 존스의 선택으로 우리는 평범한 맥주 캔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된다. 생김새나 라벨 디자인에 처음 주목하고, 맥주 캔이 상징하는 소소한 일상과 하찮은 사물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가치와 일상 속 행복의 의미를 우리 스스로에게 새삼 되묻게 되는 것이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