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효율성 증진이 세계적 추세… 탈원전 논란에 묻힌 에너지정책 유감
신연수 논설위원
야당 대표만이 아니다. 정부 여당 역시 전기요금을 마음대로 깎아주는 세금처럼 생각하는 듯하다. 최근 한국전력공사 소액주주들이 주가 하락에 항의해 시위를 벌였다. 한전은 1분기에 6300억 원의 적자를 봤고 주가는 3년 전보다 60% 이상 떨어졌다. 전기가격은 연료비가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국제 유가가 올라가면 전기요금을 올려야 하는데 정부가 못 올리게 하니 적자를 보는 것이다.
8년 전에도 똑같았다. 2011년 소액주주들은 “전기요금을 못 올려 손해 봤다”며 국가와 한전 사장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당시 김쌍수 한전 사장은 “전기요금 인상과 연료비 연동제를 3년 내내 주장했는데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고 경영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며 사표를 냈다. 전기요금으로 선심 쓰는 건 어느 정권이나 비슷하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도 무조건 전기요금을 억누르는 게 옳은지 의문이다. 한국은 선진국들에 비해 전기요금이 싸다. 국제 원유 값이 오르면 휘발유 값이 오르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석유를 원료로 생산하는 2차 에너지인 전기가격은 오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싸게 수입할 수 있는 바나나 농장에 원가가 더 비싼 전기로 난방을 하는 ‘경제 왜곡’이 일어난다. 한국이 미국이나 러시아처럼 에너지를 자급하는 나라도 아닌데 말이다.
선진국들은 반대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가동을 대부분 중단하고 가스와 석탄 수입이 늘면서 전기요금을 kWh당 20엔에서 25엔으로 25% 올렸다. 독일도 재생에너지 확대를 추진하면서 전기요금이 세계 최고로 치솟았다. 놀라운 것은 제조업 강국인 두 나라가 전기요금이 크게 올라도 산업경쟁력을 유지한다는 사실이다. 한국이 제품 1개를 만드는 데 2.7에너지원단위를 쓰는 데 반해 독일과 일본은 1에너지원단위만 쓰도록 에너지 절감 기술을 발전시킨 덕분이다. 국민들도 큰 저항이 없다. 우리보다 전기를 덜 쓰기 때문에 전기요금이 비싸도 부담이 적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의 에너지 정책을 살펴보면 파리기후변화협약 및 탈석탄 추세로 인해 원전을 유지하는 나라도 있고 폐지하는 나라도 있지만, 공통적인 흐름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에너지 효율성 향상이다. 일본은 에너지 효율화를 통해 2030년 에너지 소비를 2013년 수준으로 줄이기로 했고, 독일도 탈원전과 함께 탄소세를 도입해 에너지 가격을 더 올리고 더 적게 쓰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한국은 원전-탈원전 논란에 매몰돼 세계 에너지산업의 혁명적 변화에 뒤처지고 있다.
에너지 효율성이야말로 제2의 원전이다. 에너지절약사회는 ‘한 등 끄기 운동’으로는 달성하지 못한다. 가격 기능을 살리고 국가적 신기술 신산업으로 추진해야 가능하다. 정부가 여름을 앞두고 또 전기요금 누진제를 손본다고 한다. 국민의 호주머니를 생각해 주는 것은 좋지만 이렇게 전기를 펑펑 쓰다가는 경제의 효율성을 해치고 자원 배분의 왜곡이 심해질 것이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