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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등생의 ‘딴짓’… “고시공부 대신 사람공부 했더니 세상 보이더라”

입력 | 2019-05-30 03:00:00

이승환 청년교육 사회적 협동조합 ‘씨드콥’ 대표




23일 서울 중구의 공유오피스 위워크 사무실에서 만난 사회적 협동조합 ‘씨드콥’ 대표 이승환 씨(34)가 자체 제작한 각종 교구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씨는 청년들이 세운 17개 교육단체 및 기업들을 조합원으로 이 단체를 조직했다. SK행복나눔재단 제공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맞춰 ‘교육’도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거주 지역이나 학습목표, 학습자가 처한 환경에 따라 차별화된 교육방식을 적용해야 하지만 모든 것을 공교육이 해결하길 기대하긴 어렵다. 최근엔 그 자리를 채우는 역할을 하는 각종 비영리 민간교육단체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 같은 17개의 교육 관련 청년단체 및 기업을 조합원으로 하는 청년교육 사회적 협동조합 ‘씨드콥’을 만든 이승환 대표(34)를 23일 서울 중구에 위치한 공유오피스 위워크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우리 조합을 후원하는 학부모 200여 명을 대상으로 각종 세미나를 이곳에서 자주 연다”며 “전국 각지에서 모인 학부모들이 편하게 찾아올 수 있도록 사무실을 서울역 바로 앞에 잡았다”고 설명했다.

○ 서울대 법대 진학한 ‘우등생’의 일탈

이 대표는 학창시절 전형적인 모범생의 길을 걸었다. 줄곧 서울 여의도에서 자라며 중학교 내신에서 최상위권을 놓쳐본 적이 없다. 공부 잘하는 남학생이 한 번쯤 생각하는 ‘서울과학고’에 응시해 합격했다. 3월 입학을 앞두고 겨울방학 동안 열린 서울과고 예비과정을 들으며 그는 “내 성향과 맞지 않는 길을 왔구나”라는 후회를 했다.

결국 그는 입학 후 한 달 만에 일반고로 전학했다. 옮긴 학교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아 무난히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는 고시생처럼 살기보단 ‘딴짓’에 더 눈을 돌렸다. 친구 4명과 유럽 배낭여행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봉사 동아리를 조직해 활동하는 것이 공부보다 더 재미있게 느껴졌다.

“학창시절엔 몰랐던 세계들을 접하며 ‘가장 가치 있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사람을 돕고, 가르치는 일을 내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는 결심처럼 대학 재학시절 내내 엉뚱한 도전들을 해나갔다. 정신지체장애인농구단 ‘MRBT’를 만들었고, 서울대의 학내 공식 봉사단을 창단했다. 재일교포 어린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동아리 ‘국일’을 조직해 지금까지 10년째 방학 때마다 봉사단원을 이끌고 일본의 한인학교에서 교육봉사를 하고 있다. 그는 “진로에 관해선 이처럼 ‘갈지(之)자’를 그리며 고민을 한 덕분인지 교육 분야의 사회적 기업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 지속가능하고 즐겁게 가르치는 법

이 씨의 주 관심사는 ‘지속가능하고 즐거운 교육’이다. 그가 ‘씨드콥’ 설립 작업을 시작한 2014년엔 한국에서 각종 교육 관련 벤처와 사회단체들이 생겨났을 무렵이다. 각 단체가 의미 있는 활동을 하고 있지만, 지속가능한 모델이 없다는 점이 한계였다. 그는 단체 운영자들과 1년 동안 만나며 고민한 끝에 ‘사회적 협동조합’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개별적으로 운영돼 온 17개 교육단체들을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묶으니 장점이 많았다. 가장 현실적으로 와닿는 것은 비용처리다. 많은 기업들이 사회공헌활동의 일환으로 교육기관과 파트너십을 맺을 때 ‘기부금’ 형태로 지출을 한다. 이 경우 ‘사회적 협동조합’ 소속 조합원이면 일을 진행하기 수월해진다. ‘씨드콥’을 통해 각 단체가 연계되다보니 조합원 간 콘텐츠 공유가 원활해졌고, ‘씨드콥’ 자체 제작 교구들도 활용할 수 있었다.

그는 “환경보호, 기업가 정신, 정보기술(IT) 코딩 등 어린이들이 다소 어렵게 느낄 수 있는 개념들도 쉽고 재미있게 익힐 수 있는 교구를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에너지 회사인 A 사가 사회공헌 차원에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친환경 에너지’를 가르칠 때 여기에 활용할 수 있는 맞춤형 보드게임이나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개발하는 것이다. “교육공학을 전공한 ‘씨드콥’의 R&D센터 임직원들이 이 역할을 맡는다”고 이 씨는 설명했다.

2015년 ‘씨드콥’ 설립인가를 받고 약 4년째 운영 중인 그는 “학생들이 교구를 움직이며 재미있게 학습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뿌듯하다”고 말했다. ‘씨드콥’은 도시에 비해 직업군이 다양하지 않은 농어촌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의 진로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진로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 사회적 가치를 위해 일한다는 것

사회적 협동조합 운영이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특목고, 서울대 법대도 어렵지 않게 붙었던 우등생이 돈이 아닌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고 할 때 주변에서 보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는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이라고 세속적 잣대에 맞춰 설명할 수 없을 때 어려움을 느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고민이 들 때마다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고 설명했다. 이 일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신을 설득할 수 있어야만 주변의 시선과 무관하게 우직하게 한길을 갈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들에 대한 기대가 컸던 부모님도 이제는 ‘씨드콥’의 든든한 응원자가 됐다.

현재 조합의 수입은 대기업 또는 관공서와의 교육협업, 지역 진로체험 교육 등을 통해 발생한다. 또 교육격차를 해소한다는 취지에 공감한 200여 명의 학부모들이 개인후원자로 참여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회사의 규모를 더 키워서 교사 개인의 역량에 구애받지 않는 질 높은 교육을 할 수 있는 다양한 교구를 개발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