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그제 ‘외교부 기밀 유출 사건’과 관련해 자유한국당에 대해 “정상 간의 통화 내용까지 유출하면서 정쟁의 소재로 삼고, 이를 공익 제보라는 식으로 두둔하고 비호하는 정당의 행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당리당략을 국익에 앞세우는 정치’라는 강한 표현도 등장했다. 이에 황교안 한국당 대표는 “문재인 정권은 사상 최악의 비상식 정권”이라고 맞받았다.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정면충돌하는 양상이다.
이번 사건을 놓고 여야는 이미 날 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이처럼 정쟁으로 번진 사안에 대해 대통령까지 대국민 사과를 넘어서서 직접 야당 비판에 나설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대통령은 한 정파의 리더가 아니라 꼬인 정국을 수습해야 할 최고책임자 역할이 막중하다. 대통령까지 정쟁의 한복판에 뛰어들면 국정 파행은 수습이 어려워진다. 대통령의 발언은 퇴로가 없으므로 그만큼 무거워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외교상 기밀 누설 혐의로 한국당 강효상 의원을 고발했고, 이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에 배당됐다. 야당 의원을 향한 검찰 수사가 예정된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발언은 엄정해야 할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비난을 불러올 수 있다. 대통령이 정쟁의 한복판에 있으면 여야 모두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져 국회 정상화 협상은 힘들어진다.
5월 임시국회가 아무 일도 못한 채 막을 내렸다. 신속처리안건 지정 강행을 둘러싼 대치 정국 때문이다. 지금 국회엔 추가경정예산안을 비롯해 민생 법안들이 쌓여 있다. 5월 임시국회를 보이콧한 한국당도 장외투쟁을 마무리하고 국회 등원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민감한 시기엔 정쟁의 빌미가 될 만한 일은 사소하더라도 자제하는 게 맞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직접 나서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