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축구 에이스’ 손흥민(토트넘)이 ‘꿈의 무대’로 불리는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 우승에 도전한다. 프로 데뷔 후 단 한 번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했던 손흥민은 최고의 무대에서 맘껏 포효하기 위해 이미 준비를 마쳤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8년 전의 어느 날을 기억한다. 고교 동창들과 서울 시내 한 호텔방을 예약해 치킨을 뜯으면서 TV 축구중계를 시청했다. 2011년 5월 28일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2010~2011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이하 UCL) 결승전이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잉글랜드)와 FC바르셀로나(스페인)와 빅이어(UCL 우승 트로피 애칭)를 놓고 격돌했다. 장소만 달랐을 뿐 2009년과 같은 매치 업이 이뤄져 지구촌의 관심이 대단했다.
놀랍게도 여기에 한국선수도 있었다. 맨유에 몸담은 박지성(은퇴)은 하비 에르난데스(치차리토)와 웨인 루니의 뒤를 받치는 왼쪽 날개로 출격해 90분 풀타임을 소화했다.
2009년 스페인 로마에서 펼쳐진 결승에서도 맨유는 0-2 쓰라린 패배를 맛봤다. 박지성은 현역 시절, 세 차례 UCL 파이널을 경험했다. 그런데 유일하게 뛰지 못한(그것도 경기 엔트리에서 완전히 제외된) 2008년만 맨유가 우승했으니 아쉬움은 더 크다.
허탈한 한숨을 내쉬며 뒤늦은 잠을 청하려던 친구들과의 대화가 문득 떠오른다. “앞으로 20~30년 동안 UCL 파이널에서 우리나라 선수는 보기 어려울 것 같아. 그런 무대에서 뛸 만한 선수가 정말 또 나올까?”
그런데 뒤늦게나마 말을 바꾸게 됐다. 기쁘게도(?) 예상이 완전히 벗어났다. 강산이 한 번 바뀐다는 10년이 채 흐르지 않아 우리 선수가 ‘꿈의 무대’에 다시 올랐으니 말이다. 박지성이 현역 마무리를 의식하던 2010년을 기점으로 독일 분데스리가(함부르크SV)에서 묵묵히 실력을 키워간 손흥민(토트넘 홋스퍼)이 그렇게 성장할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손흥민은 6월 2일(한국시간) 오전 4시 스페인 마드리드의 에스타디오 완다 메트로폴리타노에서 리버풀(잉글랜드)과 운명의 대결을 펼친다. 2018~2019시즌 대미를 장식할 무대.
당연히 쉽지 않다. 리버풀은 ‘이스탄불의 기적’으로 꾸준히 회자돼 온 2005년 대회 정상에 섰고, 지난시즌에도 결승에 진출했다. 유리피언컵(UCL 전신)부터 결승에 8번 올라 5차례 우승했다. 반면 토트넘은 UEFA컵(현 유로파리그) 2회(1972, 1984) 우승했으나 UCL에서는 1962년 3위가 최고 성적이다. 바이엘 레버쿠젠(독일)에 안착한 2013년부터 UCL 무대를 노크해온 손흥민도 결승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도 평범한 진리를 믿어보려 한다.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고.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더 기대가 크다. 두려울 게 없는 도전자가 훨씬 무서운 법이다. 하나만 당부하고 싶다. 어깨에 지워진 부담을 조금은 내려놓았으면 한다. 이미 충분한 행복을 안겨준 그이다. 길고 길었던 시즌을 쉼 없이 달려온 손흥민은 평생 기억될 축제를 즐기고 만끽할 자격이 차고 넘친다.
마드리드에서|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