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유 어게인 인 평양/트래비스 제퍼슨 지음·최은경 옮김/480쪽·1만8000원·메디치
지난해 10월 5일 평양 시민들이 만수대 창작사 정문 앞을 지나가는 모습. 북한은 꼭 미국인이 아니더라도 쉽게 이해하기 힘든 나라다. 정보도 부족하지만 정서나 가치관도 다른 국가와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어떤 삶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건 그곳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함부로 동조할 수 없는 만큼 입맛대로 재단하지도 말아야 한다. 동아일보DB
이 미국인은 ‘돌+아이’다. 비하할 맘은 없지만 일반적이진 않다. 세계를 방랑하던 소설가로서 북한에 흥미를 느낄 수야 있다. 근데 시기가 2016년이었다. 그해 1월, 오토 웜비어(1994∼2017)가 억류된 그때 말이다. 그런데 평양으로 1개월 어학연수를 간다고? 친동생이면 머리끄덩이 잡고 다리몽둥이를….
어쨌건 그는 갔다. “집착은 사람을 이상한 길로 돌아가게 만들고 그렇게 돌아간 길은 한 사람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결정짓기도 한다”는 저자 말마따나, 이 비정상적인 관심은 세상 누구도 하기 힘든 독특한 경험을 선사했다. 실은 2012년부터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해 꽤 친숙한 편이긴 했지만, 관광과 체류는 또 다르니까.
바로 이 지점이, 어쩌면 ‘시-유 어게인…’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이리라. 저자는 뭔가를 고발하거나 혹은 옹호하려고 이 책을 쓴 게 아니다. 정치나 도덕이란 잣대를 들이밀려고 평양에 가지 않았다. 누가 옳고 그르냐가 아니라, 거기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가가 보고 싶어서다. 서로 너무나 다른, 심지어 상대가 ‘적국(敵國)’이기까지 한 그는 어디까지 소통할 수 있을까. 판문점에서 만난 한 젊은 병사는 말한다. “미국인도 사람은 사람이네요.” 딱 그대로 저자는 그 말을 돌려주고 싶은 게다.
스스로를 “북한 최초의 미국인 유학생”이라 부르는 저자 트래비스 제퍼슨. 메디치 제공
하지만 그런 허점이 이 책의 매력을 깡그리 없애진 못한다. 형식적이고 가식적이었다 해도, 본질은 ‘사람과 사람’이 만났기 때문이다. 어디서 어떤 공감과 이해가 벌어질지 누구도 모르는 거 아닌가. 실제로도 이 책이 들려주는 체험은 의외로 놀라운 구석이 많다. 게다가 다녀온 뒤로 짐작되지만, 저자는 아주 열심히 한반도의 정세와 역사를 공부했다. 그 노력은 동의 여부를 떠나서 함부로 폄하할 수 없다.
저자에 따르면 평양은 “매일 아침 온통 안개로 뒤덮인다”. “마치 다시 꿈속으로 빠져들어 마법의 세상에 들어온” 것처럼…. 그 도시는 언제쯤이면 햇살이 비치며 환하게 실체를 드러내려나. 아니면 더 짙은 연무와 어둠 속으로 윤곽조차 감춰버릴까. 저자도 우리도 답은 모르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그곳엔 사람이 산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