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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베트남 전쟁 vs 미국 전쟁… 어떤 기억이 공정한가

입력 | 2019-06-01 03:00:00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비엣 타인 응우옌 지음·부희령 옮김/440쪽·2만2000원·더봄




1000여 년간 중국의 간섭을 받았다. 근대에 들어서는 프랑스 식민지가 됐고 일본의 침략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는 독립과 함께 이념으로 인해 남북이 쪼개져 10년에 걸친 내전을 겪었다. 한국과 비슷한 운명을 겪은 베트남의 역사다.

현대사의 전개는 우리와 달랐다. 1965년부터 10년 동안 치른 내전에서 사회주의 정권인 북베트남이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우리나라와 미국에서는 ‘베트남 전쟁’이라 일컫는다. 그런데 베트남에서는 ‘미국 전쟁’이라고 부른다. 전쟁을 기억하는 서로 다른 시선을 보여주는 결과다.

1971년 전쟁 중인 베트남에서 태어나 1975년 해상 난민이 되어 미국으로 이주한 저자가 베트남 전쟁을 공정하게 기억하는 방식을 소개한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의 교수인 저자는 2016년 베트남 전쟁을 다룬 소설 ‘동조자’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이기도 하다.

베트남 전쟁을 결과로만 따지면 미국의 패배였다. 하지만 전쟁 이후의 기억은 오히려 미국의 문화적인 승리로 이어졌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영화 ‘지옥의 묵시록’(1979년)을 비롯해 도서, 미술 등 문화 권력을 통해 미군의 희생과 영웅적인 면모를 부각하는 모습이 세계인의 인식에 남게 됐다. 베트남전에 참전한 5만8000명의 미군은 기억하지만 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300만여 명의 베트남인이 외면받는 이유다.

한국 역시 베트남전에 대한 올바른 역사 인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한국 사회가 베트남전 참전으로 얻은 경제적 이윤과 희생만을 부각하고, 한국군이 저지른 일탈 범죄에 대해서는 제대로 기억하지 않는 현실을 꼬집는다.

저자는 역사를 기록할 때 무엇보다 공정한 기억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신뿐 아니라 타자를 기억하는 윤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은 두 번 치러진다. 한 번은 전쟁터에서, 두 번째는 전쟁을 기억하는 방법을 둘러싼 다툼에서 벌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역사를 기억하는 방법으로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 사회에도 어떻게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지 일러주는 유용한 참고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