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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랑은 최고 명약… 공포감 벗고 충분한 휴식을”

입력 | 2019-06-01 03:00:00

[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
<5> 노성훈 강남세브란스병원 특임교수의 암투병기




5년 전 후두암 2기 진단을 받았던 노성훈 강남세브란스병원 위장관외과 특임교수는 암 환자의 가족이 적극 지지하고 응원해줄 것을 권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노성훈 강남세브란스병원 위장관외과 특임교수(65)는 위암 수술 분야의 대가로 꼽힌다. 1987년 위암 전문의가 된 뒤 지금까지 1만 명이 넘는 위암 환자를 수술했다. 의사 한 명이 이처럼 많은 환자를 수술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찾기 힘들다.

노 교수는 올해 초까지 연세암병원장을 맡았다. 대한암학회 이사장, 대한위암학회 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을 거쳐 현재는 대한외과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에는 암 예방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홍조근정훈장을 탔다. 웬만한 의학상이란 의학상은 대부분 수상했다. 국제 저널에 게재한 위암 관련 논문만 300여 편에 이른다.

그야말로 베스트 닥터 중의 베스트 닥터다. 그런 그도 암을 피하지는 못했다. 노 교수는 2014년 후두암에 걸렸다. 의학적으로 5년이 지나도록 재발하지 않으면 암 완치로 판정한다. 현재 4년 반을 넘겼으니 아직도 혹독하게 암과 싸우고 있는 셈이다.

많은 이들이 질병을 감추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의사는 질병에 걸려도 의사다. 노 교수는 “내 투병 경험이 환자와 그 가족의 암 투병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며 입을 열었다.

○ 암 전문가, 암에 걸리다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목에서 쉰 소리가 났다. 동료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는데 후두암 2기 진단이 나왔다. 그나마 다른 장기로 전이되지 않았고 완치 가능성도 70∼80%로 높았다. 다행스러운 결과였다. 하지만 암을 떨치지 못할지도 모르는 나머지 20∼30% 확률이 더 커 보였다.

환자들에게는 긍정적 마인드가 암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늘 조언했다. 하지만 막상 자신의 일이 되자 머리가 복잡해졌다. 무엇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30년 넘게 환자를 치료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몸이 병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잖은가. 환자에게는 건강 검진을 통해 정기적으로 체크하라면서 자신은 자주 검진을 빠뜨렸다. 돌이켜보니 바보같이 살았다.

그 다음에는 가족이 떠올랐다. 자신만 믿고 살아왔던 가족인데…. 그들에게 미안해졌다. 명색이 베스트 닥터인데 암에 걸렸으니 환자들 보기도 민망해졌다. 암 판정을 받은 초기 몇 개월은 노 교수에게 이처럼 힘든 시간이었다.

“모든 환자가 그렇겠지만 나 또한 암에 걸리면서 분노와 후회, 미안함이 한꺼번에 찾아왔습니다. 심리적으로도 상당히 위축돼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조차 싫어졌을 정도로요. 그때가 가장 힘들었지요.”

○ 최고의 치료는 가족의 사랑

주치의는 방사선 치료를 권했다. 암 부위에 매주 5회, 10분씩 방사선을 쏘였다. 방사선 치료 부작용이 나타났다. 4주 후에는 후두가 부어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고, 쉰 목소리가 더 심해졌다. 5주가 지나자 목 주변 피부가 헐어 진물이 나왔다. 식도까지 부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7주간의 집중 치료는 고통스러웠지만 성공적이었다. 3개월 후 다시 검사를 했는데 암 세포가 사라졌다. 이후 3개월마다 후두 검사를 하고 있다. 현재까지 재발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노 교수는 이 모든 것이 가족 덕분이라고 했다. 아내는 걱정하지 말라며, 완치될 것이라며 따뜻한 위로의 말을 자주 건넸다. 사실 암에 걸리기 전까지 노 교수에게 집은 그저 잠을 자는 공간에 불과했다. 평일뿐 아니라 주말에도 출근할 때가 많았다. 입원한 환자를 챙기기 위해, 논문을 쓰기 위해, 학교 행정을 챙기기 위해 주로 병원에 머물렀다.

암에 걸린 후 노 교수는 변했다.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늘렸다. 신규 환자를 적게 받고, 환자의 항암 치료는 동료 의사에게 부탁했다. 그렇게 해서 번 시간을 가족에게 투자했다. 정말 오랜만에 가족과 공연도 보고 영화관도 갔다. 가족이 자신을 지지한다는 사실 자체가 든든한 힘이 됐다.

“암에 걸린 이후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가족의 결속력이 더 강해졌어요. 서로 생각해주고 배려해주고. 대화하는 시간도 크게 늘었어요. 좀 더 따뜻해졌다고나 할까. 이런 편안한 상태가 투병 의지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됐지요.”

○ 암에 대한 공포부터 없애야

노성훈 특임교수가 병원 별관에 마련된 직원용 체력 단련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우리가 기대수명까지 살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6.2%다. 10명 중 3, 4명이 암에 걸린다는 뜻이다. 노 교수는 “고령사회가 되면서 이 비율은 더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암이 ‘일상적 질병’이 됐다는 이야기다.

암에 걸리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지만 암을 극복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이미 전체 암 환자의 절반 이상이 5년 이상 생존하고 있다. 암을 일찍 발견한 환자의 5년 생존율은 80∼90% 이상으로 높아진다. 따라서 암을 ‘공포의 질병’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 노 교수의 주장이다. 이런 공포심이 오히려 치료 효과를 떨어뜨린다.

“암에 걸리면 무조건 죽는다는 생각은 편견입니다. 암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면 오히려 당뇨병, 고혈압처럼 만성질환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조기에 발견하기만 하면 암은 치료가 가능한 질병입니다. 발상을 바꿔야 합니다.”

노 교수는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는 것이 암을 이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했다. 다른 질병과 달리 암은 상당히 악화하기 전까지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건강 검진을 거른다. 특히 중년 이후의 남성들에게서 이런 경향이 많이 나타난다. 중년 남성들은 대체로 바쁘다는 이유를 내세워 건강 검진을 받지 않는다. 이와 달리 지나치게 자신의 건강을 과시하는 유형도 있다. 그들은 아무런 증세가 없는데 굳이 건강 검진을 받을 필요가 있느냐고 항변한다.

노 교수는 이에 대해 “어떤 이유를 내세우든 타당하지 않다. 중년 이후에는 반드시 1, 2년마다 건강 검진을 받아야 한다. 검진을 받지 않았던 그 몇 해 사이에 암이 커질 수 있다. 결국 암을 악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은 이런저런 핑계들이다”라고 지적했다.

○ “자신을 혹사하는 중년 되지 않기를”

“우리나라 중년 남성들에게 휴식은 사치로 여겨지나 봐요. 내가 그랬으니까요. 수술 1만 건 돌파라는 기록도 결국 내가 안 쉬고 내 몸을 혹사시켰다는 증거 아니겠어요?”

암에 걸린 후로 노 교수는 대한민국 중년 남성 걱정을 많이 한다. 그 어느 나라보다 한국의 중년 남성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이다. 넉넉히 쉬고 재충전을 해야 질병에 걸리지 않는데 한국 직장 문화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 노 교수는 “일할 시간에 집중하는 대신 휴식 시간을 충분히 보장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 교수 자신도 요즘에는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평일에도 퇴근한 후에는 동네 공원에 가서 걷기 운동을 한다. 보통은 시속 4km 정도의 낮은 속도로 1시간을 걷는다. 이 또한 암 치료의 일환이다. 몸을 움직이면서 주변 숲도 보고 깊이 호흡도 하다 보면 암 재발에 대한 두려움도 줄어든다는 것.

얼마 전에는 골프도 배웠다. 친한 사람들과 가끔 필드에 나가기 위해서다. 스코어에는 관심이 없다. 탁 트인 공간에서 잔디를 밟고 걸으면서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사라진단다.

“스스로에게 휴식을 주세요. 정신적 여유가 생길 겁니다. 그래야 암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설령 암에 걸리더라도 극복할 수 있는 든든한 무기가 됩니다.”

▼ 암에 걸렸을 때 환자와 가족이 꼭 지켜야 할 점 ▼

의료진 믿고 체력보강-긍정 마인드로 치료 임해야

내 가족이 암에 걸리면 어떻게 될까. 상상하기도 싫지만 때로는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무턱대고 공포에 떨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노성훈 강남세브란스병원 특임교수는 적극적인 대처를 주문했다. 노 교수는 “암만 그런 게 아니다. 가족 중에 다른 중증 질환에 걸린 환자가 있다면 그 가족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 교수는 암 환자와 가족이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고 강조했다.

의료진을 신뢰하라

환자의 건강 상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의사다. 그런데도 환자와 가족들은 ‘더 나은 치료법’을 찾아 비과학적인 것에 의존하곤 한다. 이 경우 암 치료는 더 어려워지며 심지어 악화하기도 한다. 최근 의료 기술이 좋아짐에 따라 암 치료법도 다양해지고 있고 실제로 생존율도 높아지고 있다. 의사가 그 모든 정보를 알고 있다. 그러니 의사의 처방을 따르는 게 최선의 치료다.

체력을 키우라

암 수술에 이어 항암 혹은 방사선 치료를 할 때가 많다. 암과의 싸움은 장기전이다. 따라서 암에 저항할 체력이 필수적이다. 충분한 운동과 함께 균형 잡힌 식사를 해야 한다. 몸이 좋지 않다고 대충 식사하거나 죽으로 때우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가끔 고기 섭취를 피하는 암 환자가 있는데 옳지 않다. 탄 고기와 가공육은 줄이되 양질의 단백질을 충분히 먹어줘야 암과 싸울 수 있다.

긍정적 마인드를 가지라

암에 걸렸다고 해서 절망에 사로잡히는 환자들이 간혹 있다. 이러면 치료 효과도 떨어진다. 건강한 사람도 불안감을 느끼면 병에 걸리기 쉽다. 암 환자에게 불안감과 우울증은 치명적이다. 이런 증세가 있는 암 환자가 실제로 병이 악화하거나 완치율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투병해야 치료 효과도 높다.

주변에서 응원하라

환자가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과 친지, 지인들의 관심과 응원이 긍정 마인드를 갖는 데 도움을 준다. 다만 환자를 걱정한 나머지 가족들이 음식이나 운동 등 여러 영역에서 간섭하고 통제하는 것은 좋지 않다. 이 경우 환자의 스트레스가 더 커지기 때문에 부정적 효과가 크다. 이보다는 환자를 응원하고 낙심하지 않도록 지지하는 게 중요하다.

검진을 주기적으로 하라

암 치료 결과가 좋아졌다고 해서 방심해서는 안 된다. 일단 암에 걸린 환자는 재발 여부가 중요한 관심사가 돼야 한다. 실제로 암에 한번 걸린 사람이 재발하거나 다시 암에 걸릴 확률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높다. 따라서 암이 재발했는지, 혹시 새로운 암이 발생했는지를 지속적으로 체크하며 관리해야 한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