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트넘, 리버풀과의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서 0-2 패
이제 손흥민에게 ‘강행군’이나 ‘살인일정’은 꽤 익숙해졌고 어느 정도 감수해야할 레벨이 되기는 했으나 그래도 2018-19시즌은 길어도 너무 길었다. 이런 장기레이스를 끝까지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마지막에 놓치고 싶지 않은 열매가 있었기 때문인데 결과적으로 아쉬운 마무리가 됐다. 끝은 웃음이 아니라 눈물이었다. 하지만 손흥민은 또 도약했다.
토트넘이 2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의 완다 메트로폴리타노에서 열린 리버풀과의 2018-19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0-2로 패했다. 선발로 나선 손흥민은 2010-2011시즌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박지성 이후 한국 선수로는 두 번째로 챔스 결승 무대를 밟아 풀타임을 활약했으나 팀 패배와 함께 빛이 바랬다.
이날 토트넘은 시작 2분 만에 리버풀 살라에게 페널티킥 선제골을 내주고 내내 끌려갔다. 가뜩이나 챔스 결승전 경험이 없어 불안했던 토트넘 선수들에게는 악몽 같은 배경이었다. 시작부터 꼬인 토트넘의 믿을 구석은 손흥민이었다.
후방에서 롱패스를 받아 공간을 활용할 때도, 좁은 공간에서 연계 플레이를 펼칠 때도 손흥민이 중심에서 핵심 퍼즐 역할을 수행했다. 기대했던 해리 케인이 무거운 몸놀림을 보이면서 비중은 더 손흥민 쪽으로 옮겨졌다. 특히 후반전에는 거의 고군분투했으나 상대 알리송 골키퍼의 신들린 방어에 막히는 등 운이 따르지 않으면서 결국 고개를 숙였다.
결승전을 앞두고 ‘더 선’과의 인터뷰에서 손흥민은 “나는 정말로 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큰 경기에서 질 때는 정말 화가 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승부욕을 언급한 뒤 “이제 다시는 울고 싶지 않다. 절대 지고 싶지 않다”고 각오를 다진 바 있다.
그러나 시상식이 진행될 때 손흥민의 눈은 충혈 돼 있었다. 준우승 메달을 받으러 단상에 올라가는 토트넘 선수단 맨끝에 손흥민이 있었을 만큼 아쉬움이 진한 도전기였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실패’라고 말할 수 없는 손흥민의 2018-19시즌이었다.
시작도 끝도 없었던 시즌이다. 2017-18시즌을 마친 손흥민은 곧바로 2018 러시아 월드컵을 준비하는 한국대표팀에 합류했다. 신태용호의 에이스로 나선 손흥민은 독일전 득점을 포함해 2골을 기록했으나 결국 눈물을 머금었다. 막내로 출전했던 2014 브라질 월드컵 때와는 다른 눈물이었다. 그는 “나도 팀도 더 잘할 수 있었다”며 아쉬움을 곱씹었다.
잠깐 시즌 개막 준비로 토트넘과 함께 했던 손흥민은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번에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김학범호에 ‘와일드카드’로 합류했다. 이번에는 결과가 좋았다. 대회 금메달을 목에 건 손흥민은 목에 걸린 가시 같던 병역문제까지 해결하면서 런던으로 금의환향했다.
무거운 짐은 내려놓았으나 아무래도 몸이 무거워져 있었다. 때문에 한동안 슬럼프를 겪었고 2018년 11월이 다 지날 때까지 기복이 큰 경기력을 보이면서 ‘올 시즌은 쉽지 않겠다’는 말을 들어야했다. 그런데 11월25일 첼시전에서 환상적인 50m 드리블 후 득점으로 시즌 정규리그 마수걸이포를 터뜨린 이후 계속해서 골을 기록하면서 우려를 종식시켰다.
2019년 새해가 밝은 뒤 토트넘의 에이스는 단연 손흥민이었다. 그러던 차 또 한 번의 토너먼트 대회인 ‘UAE 아시안컵’ 출전을 위해 벤투호에 탑승했으니 토트넘 입장에서도 달가울 리 없었다. 그 미안함을 자신도 알고 있었고, 미안함 이상의 책임감을 지니고 있었기에 복귀 후에는 더 잘 뛰었다. 주포 케인이 부상으로 이탈한 상황에서 토트넘이 챔스 결승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손흥민의 공이 지대했다.
케인과 델레 알리 등 대다수 토트넘 선수들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으나 손흥민은 시즌 내내 건강했다. 아프지 않은 것에 끝난 게 아니라 줄곧 높은 수준의 퍼포먼스를 자랑했다. 단 하나 아쉬운 것은 마지막이다.
손흥민은 4월18일 맨체스터시티와의 챔스 8강 2차전에서 멀티골을 터뜨려 시즌 20호골(정규리그 12골, 챔스 4골, 리그컵 3골, FA컵 1골)을 작성한 뒤 리버풀과의 결승 때까지 더 이상의 득점을 추가하지 못했다. 때문에 2016-17시즌에 달성한 커리어 최다골(21골) 경신은 무산됐다. 그리고 간절히 원한 ‘빅이어’도 놓쳤다. 하지만, 결코 실패가 아니다.
상처가 남았으나 그래서 더 단단한 새살을 기대할 수 있는 손흥민이다. 길고 길었던 2018-19시즌 손흥민을 빼고 토트넘을, EPL을 챔피언스리그를 말할 수 없다. 한국 축구의 자랑 손흥민은 또 도약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