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농구는 세계 정상권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1996년 이후 올림픽 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가망 없는 종목일까? 국제대회 성적이 전부는 아니지만 희망을 주지 못하는 스포츠는 팬들을 감동시킬 수 없다. 사실 한국도 세계 정상급 선수들을 키워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미국프로농구(NBA)의 스테픈 커리는 이 가능성을 실현해 슈퍼스타가 됐다. 바로 3점슛이다. 커리는 탁월한 3점슛 능력으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3번 우승으로 이끌었고 2016년 NBA 역사상 처음으로 만장일치로 MVP에 선정됐다.
커리는 3점슛 때문에 성공한 선수이기도 하지만 3점슛을 성공(?)시킨 선수이기도 하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농구 지도자들은 3점슛이 비효율적인 공격 옵션이라고 봤다. 2009년 데뷔한 커리 역시 전문가들의 조언에 따라 볼 핸들링과 드리블을 연습해서 전형적인 포인트가드가 되는 길을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커리는 자기만의 길을 걷는다. 자신의 강점인 3점슛 기량 향상에 더 집중했다. 결과는 대성공. 커리는 게임당 평균 12개의 3점슛을 쏜다. 성공 확률은 44%나 된다. 보통 NBA 선수의 2점슛 확률(평균 45%)과 비슷하다. 성공 확률이 비슷하다면 당연히 2점슛보다 3점슛을 쏘는 게 낫다. 슛 거리도 어마어마하다. 3점슛 라인 두세 발짝 뒤에서 던져도 잘 넣는다. 드리블을 하다가도 쏘고(풀 업), 한 발 뒤로 점프하면서도 쏘는(스텝 백) 등 3점슛 관련 기술도 다양하고 창의적이다. 게다가 슛 동작이 빨라 커리가 맘먹고 쏘는 3점슛은 막는 것이 쉽지 않다.
커리와 워리어스의 성공은 농구판의 흐름 자체를 바꿔버렸다. 이제는 3점슛이 비효율적인 공격이라고 보는 사람이 없다. 포지션에 관계없이 3점슛 능력을 인정받는다. NBA가 3점슛 제도를 도입했던 1980년과 비교하면 전체적으로 3점슛 득점 비중이 14배 이상 증가했다. 진화한 3점 슈터들의 등장으로 현대 농구는 더욱 빠르고 공격적으로 변했다. 성공하려면 커리처럼 해야 한다. 약점을 보완하기보다 강점을 키워야 한다.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해도 실천하기는 어렵다. 심리적, 사회문화적 어려움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무언가를 얻을 때의 기쁨보다 잃을 때 느끼는 고통에 더 민감하다. 불확실한 선택을 해야 할 때, 기회를 추구하기보다는 실패를 회피하려 한다.
스테픈 커리
한국이 만약 그때 3점슛 기량을 더욱 높이는 데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모든 포지션 선수들이, 더 먼 곳에서, 창의적 기술로 수비를 피해 3점슛을 넣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면? 물론 그렇게 했다고 올림픽에서 미국을 이기고 금메달을 따는 팀은 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적어도 지금처럼 3점슛 능력에서마저도 세계 수준에 크게 미달하는,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는 팀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커리는 이류들이나 쓰는 기술이라던 3점슛을 주무기로 갈고닦아 세계 최고 선수가 됐다. 약점을 고치는 데 급급했던 선수들은 NBA에서 사라진다. 약점을 성공적으로 보완한 선수도 평범한 선수 생활을 이어갈 뿐이다. 스포츠에서도, 기업 경영에서도, 약점을 없애는 것으로 실패를 막을 순 있지만 성공할 수는 없다.
김유겸 서울대 체육교육과 교수 ykim22@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