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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성 와디즈 대표 “스타트업에 ‘문송’(문과라서 죄송)은 없다”

입력 | 2019-06-03 17:43:00


‘스타트업을 돕는 스타트업’ 크라우드 펀딩 업체 와디즈의 신혜성 대표(40·사진)는 2012년 창업하기 전까지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현대자동차, 동부증권, 산업은행 등 제조업과 금융업을 거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에 자금을 수혈하는 ‘미래 금융’에 눈을 떴다. 때마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연결이라는 트렌드에서 기회를 포착했다. 온라인에서 대중 투자자와 창업자를 중개하는 국내 첫 크라우드 펀딩의 탄생이다.

“은행에서 겪은 금융 위기와 전통 제조업의 퇴조를 보면서 이제 대기업 시대는 서서히 저물겠구나. 대기업이 주도해온 경제를 대체할 스타트업과 새 아이디어가 밀려들 것이라 확신했어요.”

지난달 16일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 사무실에서 만난 신 대표는 스타트업 수가 늘어나면서 스타트업 투자도 함께 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와디즈의 연간 펀딩 액수는 2016년 106억 원, 2017년 282억 원, 지난해 601억 원으로 해마다 갑절로 불어나고 있다.

신 대표는 ‘막연한 스타트업 투자’는 경계해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비트코인이 잘 된다’는 얘기만 듣고 모르는 영역에 덥석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는 “평소 자신이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영역에서 가장 잘 팔릴 것 같은 사업을 탐색하고, 또 그걸 가장 잘할 수 있는 회사를 찾아 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른바 좋아하는 일(덕질)을 즐기면서 투자를 하는 이른바 ‘덕투’ 권장이다. 국내 개봉된 일본 애니매이션 중 최고 흥행 기록(370만 관객)을 세운 ‘너의 이름은(2017)’의 배급사 ‘미디어캐슬’이 대표 사례다. 미디어캐슬은 와디즈에서 크라우드 펀딩 투자자를 모았고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투자자들은 연 80%의 수익을 얻었다.

투자를 하다 아예 스타트업 멤버로 조인한 경우도 적지 않다. 신 대표는 “초기 투자자로 참여해 창업자와 많이 소통하면서 사업을 키우는 ‘창업 간접경험’을 할 수 있다”면서 “크라우드 펀딩이 정착하면 모두가 꼭 창업할 필요는 없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한 정보기술(IT) 관련 스타트업은 평소 회계 조언을 해준 투자자를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영입하기도 했다.

신 대표는 성공하는 스타트업 창업자는 ‘스토리텔링’에 강해야 한다고도 했다. 스타트업은 대부분 기존에 없던 비즈니스가 많기 때문에 투자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와디즈에서 역대 최고 펀딩액(20억 원)을 기록한 ‘20만 원 대 노트북’이 그 사례다. 이 노트북을 제작한 스타트업은 “쓰지도 않을 고가 브랜드의 고사양을 버리고 실속있는 노트북을 20만 원에”라는 아이디어로 투자자들에게 다가갔다. 그는 “스타트업에 ‘문송’(문과라서 죄송)은 없다”면서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잘 전달하고 투자 동참을 이끌어 내려면 인문학적 소양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스타트업을 꿈꾸는 창업자들에게 항상 들려주는 말이 있다고 한다. 6년 전 ‘동아비즈니스포럼’ 강사로 나온 신시아 몽고메리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가 들려준 말이다. “‘우리 회사가 없어졌을 때 슬퍼할 고객이 있을까’ 항상 스스로에게 물어보라는 것”이다. 신 대표는 “‘무엇이 좋은지’(필 굿·feel good)보다 ‘무엇이 옳은지’(필 라이트·feel right)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더 많은 고객을 얻게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신혜성 와디즈 대표 인터뷰 전문 ▼

-크라우드 펀딩에 대해 간단히 설명?

“크라우드 펀딩은 단어의 의미는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의미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사람들이 어떤 한사람의 생각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고 집단의 지혜가 모여서 결과물을 만들어 낼수 있는 그런 서비스를 크라우드 펀딩이라고 얘기한다.”

-금융회사에서 스타트업 투자로 넘어온 이유?

“증권 은행에서 일했었는데 투자자 위주가 아닌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들에게 진짜 혜택이 가는 금융을 했으면 좋겠다는 고민을 했다. 창업할 무렵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혁명에 따른 메가트렌드가 ‘연결’이었고 이걸 금융업과 연결해 ‘(전에 없는) 다른 금융’을 할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와디즈를 창업하게 됐다.”

-기존 벤처투자(VC) 시장의 문제점?

“올드프레임으로 보는 사례가 많았다. 내가 모르는 것에는 절대 투자하지 않는 것. 금융 대리인이 전지전능해서 모든 것을 다 안다면 넥스트 트렌드를 정확하게 읽어낼수 있을텐데 모르는데 투자안한다고 하면 그일을 하면 안되는 거다. 예를 들어 요즘 젊은 세대 소비트렌드가 어떻게 바뀌는지 전혀 고민하지 않는, 명품에만 관심많은 중장년 투자심사역이 요즘 유행하는 가방을 평가절하하는 꼴. 내가 경험해보지 않고 공감할수 없는 아이템이라고 해서 그 사업은 형편없는 것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문제있다. 그래서 돈의 주인이 직접 투자할 수 있는게 제일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각자가 다양한 기준으로 투자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있었다. SNS를 기반으로 수요자와 공급자를 다이렉트로 만나게 하면 대안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스타트업 투자가 왜 필요한지?

“투자도 결국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경제성장이 빠르게 이뤄지고 연 10% 이상 성장했을때는 부동산 투자 등으로 부가 증대됐는데 이제 시대가 달라졌다. 투자라는 것은 지금 쓸수 있는 소비를 줄여서 미래로 이연시키는 것인데 예금 수익은 부를 증식시키는 개념은 아니잖나. 스타트업 투자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물가상승률 플러스 알파를 가져올수 있는 투자상품이 뭐가 있느냐. 고성장기에는 신입사원이 5년 안에 1억을 만들 수 있는 방법 등 책들도 많았는데 그런 시대가 종결됐다. 스타트업에서는 잘되는 곳은 매년 100% 이상씩 성장한다. 그러지 않으면 남아있을수가 없다. 내가 잘아는 분야 기업을 잘 찾고 소액으로 투자해보고, 괜찮다 싶으면 유상증자할 때 목돈을 더 지분투자하고, 잘됐을때 경제적 효익 플러스 조인할수 있는 기회도 생기고, 그러면서 창업할수 있는 기회도 만들 수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 권하는 바이다.”

-와디즈에서 투자자를 서포터라고 부르는 이유?

“투자자라는 단어는 부담스러운 단어다. 채권자같고 권리를 가진 사람들인 것 같고. 그런데 사실을 한배를 탄 사람들이다. 와디즈에서는 자금을 조달하는 스타트업들을 ‘메이커’라고 부르고 투자하는 사람들을 ‘서포터’라고 부른다. 와디즈는 단순히 뭔가를 사는 공간이 아니다. 메이커는 밸류를 크리에이션하는 주체들이고, 밸류를 평가하는 사람들을 서포터라고 한다. 메이커들은 새로운 혁신을 주도하는 사람들인데 그게 혁신인지 아닌지를 확정해주는 사람들이 서포터들이다. 단순 평가자나 배심원이 아니라, 내가 (사업이) 된다고 생각했을때 돈을 같이 넣어주는 사람들인거고 그거에 가장 먼저 반응해주는 사람들이다.”

-서포터로 참여하다가 스타트업에 조인한 사례도 있나?

“IT비즈니스 업체에 투자한 서포터가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해 대표와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도움을 줬다. 이 서포터는 금융회사에 다니는 사람이었다. 스타트업 대부분이 소수의 인원으로 시작하니까 비어있는 포지션이 많은데 그 스타트업은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비어있었다. 창업자가 서포터에게 ‘당신은 선의로 도와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여기저기 소개해주면서 너무 고맙다’며 아예 회사 CFO 영입을 제안한 경우가 있다. 이밖에 유통회사에 다니는 서포터인데 자신이 투자한 메이커의 제품이 좋아서 MD에게 소개해주고 입점되는 등 판로개척은 늘상 있는 일이다. 색깔이나 맛 등 상품 피드백은 엄청 많다.”

-크라우드 펀딩이 창업을 간접 경험할 수 있는 창구가 될 수 있는지?

“와디즈를 통해 모든 사람이 창업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업에 있는 분들은 언젠가 창업을 하겠다고 생각하는데 되게 이른 단계부터 좋은 기업을 발굴하고 거기 들어가서 보고 Q&A도 많이 하고 오프라인 행사도 참여하면서 얼마든지 창업자들을 만나볼수 있다. 초기 투자자가 되고 기여를 하다보면 진짜 그 업체와 잘 맞아서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스타트업에 들어간 사람도 봤다. 스타트업 대표가 먼저 오퍼를 하는 경우도 많은데 조인해도 되고 장기투자자로 남아도 된다.”

-크라우드 펀딩을 위해선 불특정 다수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가 중요한 것 같다.

“사람들은 점점 왓(What)뿐 아니라 와이(Why)에 끌리고 있다. 벤처투자도 마찬가지인데, 어떤 사람이 사업의 개요, 현황, 전략을 나열식으로 설명하는 것보다 이 사업을 왜 시작하게 됐고 그것을 통해 어떤 기여를 하려 하고 어떤 시도를 해봤고 결과는 어땠는지 이야기를 했을때 청자는 ‘이 사업은 되겠구나’ 공감하는 것과 동일하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서 중요한건 모든 콘텐츠가 상대방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는 것. 이미지와 내용들이 상대방에게 호소가 돼야지 유심히 볼수 있게 된다. 아직 실현되지 않는 비즈니스는 이야기의 힘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초기 창업에서 ‘이야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필요하겠다.

“문송(문과라서 죄송)이라는 말은 조만간 바뀔거 같다. 아날로그의 반격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결국 사람들은 감정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전달하는가가 중요하다. 문과 출신도 서비스에 대한 인식을 하고 새로운 기술에 대한 이해력이 많아지고 있다. 새로운 기술을 전달하는 데 인문학적 소양이 있는 사람들이 더 잘할수 있다. 와디즈에서도 제품 소개를 잘하는 사람들은 평소에 항상 책을 끼고 있는 사람들이다. 어떻게 이야기 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잘 전달할수 있을지, 그런 스토리 전달이 점점 더 중요해 지고 있다.”

-이외 창업 성공을 위해 반드시 체크할 것?

“사업으로 진행한다면 내가 이것을 정말 좋아하고 또 잘하는지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혼자 할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모두 다 갖추고 시작하는 사람은 없으니 그걸 배울수 있는 사람을 찾아나서는 것이 중요하다. 멘토는 절대로 내가 주도하는 모임에서 만날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주인공이 아닌 자리에 잘 안가려고 한다. 창업자의 경우는 상당히 주도적인 사람들이어서 내가 어떤 인식이 되는지 중요해서 모임을 골라서 간다. 나도 ‘내가 굳이 거기 나가야 하나’ 그런 퀘스천이 있는 자리에 나갔다가 좋은 분들을 만난 적이 많았다. 나도 이런 자리에서 만난 멘토에게 고민하던 것을 질문했는데 책을 추천해줬고, 그 다음에 만났을때 책을 본 이야기를 했더니 ‘이 사람은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구나’라는 공감이 오가서 스승이 됐다.”

-지금 주목하는 메가트렌드?

“과거 NBA 루키 플레이어들이 스폰서쉽을 받을때 나이키 선택이 95%였는데 요즘 50%대로 빠졌다는 기사를 봤다. 그들 대부분이 2000년생. 이 세대들은 브랜드 자체보다 내가 왜 그 브랜드에 귀속돼야 하는지 생각하는 것 같다.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만족감이 어디서 오는지에서 오는 생각. 그러다보니 트렌드가 많이 세분화되는 것 같다. 세분화되니까 작아보이지만 유니크한 카테고리가 생긴다. 과거에는 모든 사람들이 입는 브랜드여야 성공했지만 요즘에는 세분화된 사업이 나올수 있는 환경이 된 것이다. 소비가 쪼개지다보니까 몇 개의 제품을 만들어야되는지 모르겠고 어디로 타겟팅 해야할지 모르겠는거다. 그러다보니 소비자들에게서 트렌드를 직접 뽑아내야 하는 이슈가 발생한다. 소위 머쳔다이징(MD)의 시대는 끝났다. 인하우스에서 소비를 예측해서 그것을 잘 만드는 시대는 끝났고, 시장에서 어떤 수요가 있는지 잘 발견하고 세분화해서 제품을 론칭하는 시대로 가는 것이 큰 변화인 것 같다.”

-와디즈에서는 요즘 어떤 사업이 주목받았나?

“최고 펀딩 기록을 경신한 베이직스(저가 노트북)의 모토는 ‘노트북은 원래 비싸지 않습니다’였다. 생산구조 어디에서 불필요한 절차, 마진이 있고 그걸 제거하면 생산자와 소비자가 윈윈하는 구조가 된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밸류체인을 줄일때 모두가 만족할수 있는 결과를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산업의 페인포인트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밸류체인상 최종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하면 모두를 만족시킬수 있어 라고 생각한다면 새로운 사업들이 많이 나올수 있다.”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아쉬운 점?

“한국에서 개선돼야한다고 말하는 것이 엑싯(Exit) 시장이다. 창업을 어렵게 하는 부분이 기업공개(IPO) 말고 한국에서 Exit할게 별로 없다는 점이다. IPO하려면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IPO 아니면 인수합병(M&A)인데 M&A 쪽은 정말 B2B 기술 가진 회사들 외에는 정말 투자받기 어려운 환경이다. 이 한계를 바꾸는 게 우리 과제다. 창업자들은 투자자들을 어떻게 Exit시켜줄것인지 생각하고 시작하는게 제일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창업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

“창업자들은 지나가다가 누구든지 돌아볼수 있게 하는 ‘다름’을 만들어내야 한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자기의 혼을 담을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 와디즈가 대한민국에서 없던 산업을 만들어낼수 있었던 이유는 ‘필 굿’과 ‘필 라이트’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빠른가 얼마나 편한가에 집중하면 더 빠르고 편한 놈이 나오면 없어질 수밖에 없다. 필 굿에만 집중하게 되면 결국에는 무한경쟁이다. 거기서는 다름을 얘기할 수 없고 다름이 없다면 우리를 위해서 울어줄수 있는 고객이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필 라이트에 초점을 맞춘다. 무엇이 옳은가, 무엇이 필요한가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