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저물어가는 ‘세계화
이에 따라 최근 수출 감소로 타격을 받고 있는 한국 경제는 체질 개선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각자도생 글로벌 경제, 저물어가는 ‘세계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3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BOK(한국은행) 국제콘퍼런스’ 개회식에서 “세계화 흐름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어 ‘슬로벌라이제이션’이라는 신조어를 언급하며 “글로벌 연계성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글로벌 연계성이 약화되면 국제 분업과 기술 확산이 위축되면서 막대한 조정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장 상징적인 지표는 무역 규모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1991년부터 2008년까지 세계 무역 성장률은 연평균 6.0%였다. 하지만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최근 10년 동안은 연평균 2.5%에 그쳤다. 이코노미스트지는 2008년과 지난해를 비교했을 때 국경을 넘는 은행 대출 비중이 2006년 60%에서 지난해 36%로 감소했으며 해외 직접투자의 경우도 전체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7년 3.5%에서 지난해 1.3%로 줄었다고 지적했다.
○ 세계화 흐름 바뀌면 선진국, 신흥국 모두 위기
슬로벌라이제이션은 세계 경제에 중장기적 충격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각국 경제의 성장이 느려지는 것에 더해 제조업의 비중이 함께 줄어들면 기업과 국가 모두 기존 산업구조의 개편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마이클 지저스 이코노미스트는 “세계화가 느려지고 있다는 징후들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로 인해 더 뚜렷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세계 곳곳에 부품 공급망을 분산시킨 애플, HP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은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같은 우려 탓에 기업인들의 경제 전망은 어두워지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사 KPMG인터내셔널이 세계 11개국 최고경영자(CEO) 13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향후 3년간 세계 경제가 조금이라도 성장할 것으로 내다본 CEO는 62%에 불과했다. 이는 지난해보다 5%포인트 떨어진 수치다.
슬로벌라이제이션은 선진국은 물론 신흥국 경제에도 위기를 야기할 것이란 지적이 나왔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슬로벌라이제이션은) 무역의존도가 높고 내수 기반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신흥국 경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한은 국제콘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한 카먼 라인하트 미 하버드대 교수는 “신흥국은 과다 부채가 문제고 선진국은 경기 변화에 대응할 정책 여력이 부족하다”며 “특히 ‘탈세계화’에 따른 무역성장률 감소는 선진국의 위기 요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수출 비중이 높은 한국은 큰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발표한 ‘주요 20개국(G20) 상품 교역 통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한국의 수출은 1386억 달러로 전 분기보다 7.1% 줄었다. G20 국가 중에서 가장 큰 감소율이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