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정년연장 비결은 퇴직뒤 임금 낮춰 계약사원 재고용, 고용유지 대신 임금체계 함께 손봐 세대갈등 줄인 경기 활황도 한몫
일본의 사례는 임금 체계도 함께 손보면서 기업의 부담을 크게 줄이는 방식이다. 생산연령인구(15∼64세)가 가파르게 줄고 경기가 살아나면서 정년 연장으로 인한 세대 간 갈등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일본이 자국 상황에 맞는 모델을 만든 것처럼, 한국도 ‘한국형 정년 연장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본 정부는 2013년 고령자고용안정법을 개정해 종업원이 희망하면 만 65세까지 일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①정년 연장 ②정년 폐지 ③계약사원 재고용 등 세 가지 선택지를 기업에 제시했다. 모든 선택지의 공통점은 65세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임금을 깎는 일종의 ‘임금 피크제’를 활용한다는 대목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일본 정부는 최근 만 70세로 정년을 더 늘리는 개정안을 발표했다. 여기에서도 기업을 배려했다. 기존 ①∼③방법뿐 아니라 ④창업 지원 ⑤다른 기업으로 재취업 지원 ⑥프리랜서로 일하도록 지원 ⑦비영리단체(NPO) 활동 지원 등 네 가지 선택지를 추가로 제시했다. 더구나 정부는 65세 정년 연장을 기업에 ‘의무’로 지웠지만, 70세 정년 연장은 기업에 ‘노력’하게끔 했다.
일본에서 노무사무소 TOSS를 운영하는 김승민 노무사는 “한국 정부가 정년을 늘리려면 일본처럼 기업의 부담을 낮춰줘 임금 유연성을 확보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3년 당시 일본 산업계에서도 지금 한국에서처럼 ‘고용 연장 조치가 청년 일자리를 줄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 경단련(經團連)이 2013년 실시한 조사에서 기업의 40%는 ‘앞으로 신규 채용을 줄이겠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우려했던 청년 일자리 감소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두 가지 요인 덕분이었다.
첫째, 생산연령인구가 가파르게 줄었다. 지난해 생산연령인구는 2017년 대비 51만2000명 줄어든 7545만1000명이다.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59.7%로 1950년 이후 가장 낮았다. 일본 사회가 빠르게 고령화되면서 일할 사람들이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다른 국가도 자국 상황에 맞춘 정년 연장을 선택하고 있다. 독일은 현재 65세인 정년을 2029년까지 67세로 연장한다. 숙련공 부족이 워낙 심각해 시니어들의 노하우를 계속 활용하겠다는 목적이 가장 크다. 미국이나 영국은 아예 정년이 없다. 미국 의회는 연령에 따른 고용 차별을 막기 위해 1986년 65세로 규정된 법적 의무 정년을 없앴다. 영국도 같은 이유로 ‘65세 정년’을 2011년에 없앴다.
도쿄=박형준 lovesong@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