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미수범 영상 본뒤 자구책 고심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 당시 상황을 담은 폐쇄회로(CC)TV 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유포된 뒤로 권 씨처럼 혼자 사는 여성들이 각자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직장인 이하나 씨(26·여)는 사건 동영상을 접한 뒤로 매일 밤 잠들기 전 빨래 건조대를 출입문 쪽으로 바짝 붙여 놓는다. 자고 있는 동안 누군가가 문을 따고 침입할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이 발생한 곳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살고 있는 이 씨는 빨래 건조대가 넘어지는 소리를 들으면 경찰에 신고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벌 수 있을 것 같아 이런 자구책을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이 씨는 또 자신이 거주하는 원룸의 도어록 번호키 비밀번호를 누른 뒤에는 반드시 소매로 번호키 위를 문질러 닦는다. 누군가가 번호키에 남은 지문을 보고 비밀번호를 알아낼까 봐 두려워서다.
집 안에 다른 사람이 같이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하는 여성도 있다. 직장인 박모 씨(28·여)는 배달음식을 주문한 뒤 배달원이 벨을 누르면 집 안에서 “야! (배달) 왔다!” 하고 누군가에게 알리듯이 큰 소리로 말한다. 박 씨는 한 남성 배달원이 배달을 왔다가 자신의 집 안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내부를 훑어보는 일이 있은 뒤로 이런 연기를 하게 됐다고 한다. 한 유튜버는 박 씨처럼 불안해하는 여성들을 위해 “자기가 좀 받아줘” “그냥 가세요”라고 말하는 등 남자 목소리가 담긴 9개의 파일을 제작해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다.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 당시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들의 대응이 미흡했다는 논란이 일면서 여성들 사이에서는 경찰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다. 취업 준비생 고모 씨(26·여)는 “선배들이 무슨 일이 생기면 112에 신고하지 말고 119에 신고하라는 ‘팁’을 줄 정도”라고 말했다. 서울 관악경찰서는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들이 당시 범행 발생 장소인 원룸 건물 6층을 확인하지 않고 철수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초동조치에 문제가 없었는지를 조사 중이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